늦여름, 새벽 3시
- 최지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그 사이
그 어디쯤
달이 가고 해가 오는 그 사이
그 어디쯤
이름 모를 창 밖의 새는
헤어짐이 슬퍼 우는 것일까
만남이 기뻐 웃는 것일까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열면
걸음을 떼기 싫어하는 여름의 투정이고
어서 오고 싶어하는 가을의 재촉이다
십 대의 마지막 여름
그 끝자락을 붙잡아 내 청춘을 새겨본다
치킨
- 최지혜
내 눈 앞에 있는 너를
그 무엇보다 향기로운 너를
마치 어여쁜 꽃을 보듯 바라보니
너의 뽀얀 살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
그 때 전해지는 느낌이
그 향기가 좋아
내 몸 속에서 타오르는 너를 향한 이 욕망은
네 내음을 맡고 있음에도
식을 줄을 모르니
너의 뜨거운 살과
나의 뜨거운 입술이 부딪히는 순간
그 순간이 너무도 좋아서
마침내 너와 내가 내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그 때 나는 또 한 번 느낀다
너는 나의 기쁨이라는 것을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자체공강
- 최지혜
침대가 N극이고
내 몸이 S극이라
이런 것일까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어있듯
내 몸이 침대에 붙어있다
그 아인 살기 위해라지만
나는 무엇 때문인가
우주에서 먼지 하나라는
한없이 가벼운 내 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한없이 가라앉는다
오늘도 역시
자체공강이다
엄마의 얼굴
- 최지혜
주름 깊은 엄마의 얼굴을
가마안히 들여다 보노라면
있다
고무줄 놀이에 교복치마가 찢긴 소녀가
첫사랑과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아가씨가
연인에게 꽃을 받고 활짝 웃는 여자가
누구보다 아름다울 10월의 신부가
그리고
내 앞에
한철 피는 꽃보다 고운 우리 엄마가
모기
- 최지혜
길고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이리 저리 먹잇감을 노리는 게
꼭 얄밉다
내 피를 주는 건 아깝지 않다만
허락이라도 받으면 좀 좋을까
아니다
피를 먹겠소
하면
그러시오
할 자신이 없다
내 눈을 피해 조용히 왔다 가는
도둑놈
그 도둑놈과의 전쟁은
영원히 반복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