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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초 만나는 날


그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처음 입는 교복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앞으로 있을 학교생활을 기대하며 등굣길에 올랐다. 앞으로 어떤 친구들을 만날지, 어떤 재미있는 선생님을 만날지 기대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비록 공부는 못하더라도, 좋은 친구라도 많이 사겨보고 싶었다.

그렇게 얼만 큼 걸었을까, 그것은 어느 언덕길을 오를 때였다.

터벅, 터벅..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다가오는 한 소녀가 있었다.

검은 흑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언덕 위에서 조용히 걸어오는 그녀 또한 등굣길에 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소년은 정말 예쁜 여자애구나 라고 중얼거려본다.

그 소녀가 소년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시간은 약 3.

오직 스쳐 지나 갈뿐이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향기로운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이런 학교에 늦겠는데?”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는 가방을 둘러메고 언덕 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긴 거리를 뛰어서 10. 그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솔직히 몇 번이나 숨을 골랐지만) 다행스럽게도 담임선생님은 좋은 분이셨기에 가볍게 웃으며 넘어가주셨다.

소년은 반 둘러다 보았다.

모두들 생기가 넘쳐 보였다.

같은 학교에서 온 녀석들이 있는 반면, 벌써부터 친구를 만들어버린 녀석도 있었다.

혹은 멋지게 혼자서 앉아 창밖을 바라다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시끄럽게 떠들며 분위기메이커의 역할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진 수업시간은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선생님들도 재미있어서 수업이 지겹지가 않았다. 솔직히 수업이 재미있었다는 것뿐이지, 수업의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해오지 않았던 그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다.

6교시라는 기나긴 시간을 마치고 드디어 찾아온 즐거운 하교시간이다. 좋은 친구들과 같이 수업 받는 것도 좋지만, 힘겨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이시간은 그야말로 극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나 집에 돌아갈 때도 아침에 만났던 그 소녀를 만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당히 예뻤던 여자였던지라 집에 갈 때 한 번 더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는 그 순간 까지 소녀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서 가방을 둘러멘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며 집을 등 뒤로 하였다.

터벅, 터벅 터벅..

또 올라가게 되는 언덕.

앞으로 1년 동안 이곳을 올라가야 한다.

나무들이 환영해주듯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 언덕을 올라가던 도중.

그는 눈앞의 소녀를 보게 된다.

그렇다. 어제 만났던 그 소녀였다. 검은 흑발의 머리카락을 흔들리며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그녀를 보고 소년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그 시간은 약 3.

그것은 결코 만남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하고 소심한 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매일 아침마다 그녀를 보게 되었다.

언제나 다름없는 모습의 그녀를 아침마다 바라보며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같이 하복을 입고, 같이 동복을 입고…….

이런 모습을 보니 뭔가 모르게 같은 학교에 다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저 교복은 어디를 봐도 소년이 다니는 학교와는 다른 곳이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하루에 3초를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졸업을 한 소년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마지막 하굣길에 올랐다. 친구들은 모두 작별을 고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고, 소년 또한 방학이 끝나고 있을 새로운 고교 생활을 준비하게 되었다.

성적이 좋지 못했던 그는 인문계에 가지 못하고 실업계를 갈수밖에 없었다.

좋은 학교로 들어가 좋은 대학에 갈수 없다는 것에 부모님에게 약간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성적이 부족한데 실업계고등학교에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새롭게 시작된 고등학교 생활.

소년은 여태 입던 교복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교복을 입는다.

오늘부터 나는 고등학생인거야.

이번에는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실업계는 '따라지 학교' 라는 소문이 자자하고 그 소문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지만.

인문계에 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것보다는 낫다 는 생각을 해보면 실업계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언제나처럼 학교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던 도중 소년은 발걸음을 멈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그 소녀가 그의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다른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길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소녀는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소년의 옆을 지나갔다. 말을 걸어 볼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보지만, 하루에 3초 만나기만 했던 사람에게 말걸 기는 거북했다.

하지만 소년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만날 수 있었어.”

아니, 오늘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만날 수 있다.

그 사실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언제나 아침 언덕길에서 만나는 소녀의 모습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졌다.

어떤 날은 기분이 안 좋다거나.

어떤 날은 상쾌하다거나.

어떤 날은 행복하다거나.

같은 표정 속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정을 보는 것이 얼마나 즐겁던지.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보며 걱정하거나 쿡쿡 웃기도 하였다.

하루에 3초밖에 없는 작고 작은 행복.

그녀를 만날 수 없는 방학이 괴로울 정도였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같은 반 여자애의 목소리에 소년은 정신을 차린다. 그녀의 물음에 소년은 아침에 만나는 소녀에 대해 걱정한다고 말 할 수는 없었기에 말을 삼킨다.

지금 말을 걸어온 이 여자애는 서수연이라고 한다.

1학년 때부터 2학년인 지금 까지, 상당히 친하게 지내온 여자애다.

이것저것 그와 취미가 비슷한 것을 계기로 여태까지 친해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해도 상당히 잘 통하고, 서로 잘 알고 있는 것이 있기에 서로가 대화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궁합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인문계에 입학한 친구들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 까 생각을 했어.”

생각할 필요가 뭐있어? 우리들이 이렇게 놀고 있는 동안에 그 녀석들은 책을 펼치고 열심히 공부 하고 있을 것이 뻔 하잖아. , 모든 인문계 학생들이 열공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뭐 그건 맞는 말이야. 하고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느닷없이 소년의 앞에 얼굴을 들이 내밀더니,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소년은 당황하며 고개를 뒤로 빼려고 하였지만 수연의 저 강렬한 눈빛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 거짓말 한 거 아니지?”

"아냐, 절대로 아니라고. “

진짜?”

"진짜라니까! 얼굴 가까워! 너무 가깝다고! “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래? 라며 수연은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를 빼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곤 그녀는 잠자려고 자세를 잡고 있던 소년을 붙잡고서 말하길.

나 오늘 너희 집 가도 돼?”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느닷없이! “

아니, 나 오늘 너무 심심해서 그래. 원래 약속이 잡혀져있었던 친구들이 갑자기 일이 생기고, 집에 가도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평소에 하던 짓만 하고 있을 거고 말이야, 어차피 시간도 남아돌겠다. 그럴 바에 차라리 네 집에 가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아서.”

"어째서 우리 집에 오면 재밌는 건데! “

어찌됐든 그걸로 알고 있으라고. 그럼 선생님 오겠으니 나는 이만 우리 반에 돌아갈게.”

그리곤 멋대로 약속을 잡아놓고 이쪽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녀는 문을 열고 모습을 감춘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만나는지는 안 정해도 되는 건가?”

, 상관없나.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어떻게 되든 그다지 상관은 없으니까 말이다 .

 

생각 외로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어도 수연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늦게 마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먼저 마치고 교실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마, 그 녀석.. 자기가 멋대로 정해놓은 약속 까먹은 거 아냐?

그녀의 성격상 그럴 수도 있다.

수행평가를 한다면서 공책을 빌려가더니 제출일 에 절대로 가져오지 않는 녀석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한 소년은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거실에 나와 계시던 어머니가 그를 반겨준다.

왔니?, 밥 먹을래?”

아니, 좀 있다가 밥 먹을래. 오다가 매점에서 햄버거 사먹고 왔거든.”

그리곤 방문을 열고 가방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마이를 벗어 던진 후에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있자

, 이제 왔니?”

아아, 뭐 좀 사먹다가 오니 늦어버렸어.”

한 소녀가 의자에 당당히 앉아 소년의 방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잠깐!! 너 뭐야! 어째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그전에 어째서 내 방에 멋대로 들어와서 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데!”

우와, 너 이런 게 취미였어? 정말 매니악틱 하다. 이런 플레이를 받아줄 여자가 있을까나 모르겠네.”

모니터 속에서는 아름다움 미소녀들이 나와서 굵고 붉게 달아오른 육봉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생활에 유용한 기본적인 일본어를 열심히 난무했다.

소년은 훌륭한 일본어 교육 동영상을 황급히 Alt+f4 신공으로 꺼버리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 내린 후 언성을 높였다.

야 인마! 어째서 멋대로! 남의 보물을!!... 이 아니라. 남의 데이터를 훔쳐보는 거야!”

저거 하나 있으면 밥 몇 공기 먹을 수 있어?'

"그 딴 거 묻지 마!!! “

그나저나, 너랑 관계 한번 맺으려고 하면 그전에 '도구' 산다고 돈이 엄청 깨지겠다.

더 이상 아무 말 하지마아아아아아!!”

부끄러움과 분노가 하나로 뒤섞이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어째서 먼저 네가 우리 집에 와있는 건데.”

에에, 그 이유를 설명해야 돼?, 나 그런 거 남자 앞에서 말하는 거 처음인데. 너 보기와는 다르게 정말 엣찌하다~.”

그런 전문 용어 어디서 또 배우고 온 거야!!, 그리고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소리나 하고 앉았고!”

 

어머, 둘은 그런 사이였니? 어느새 내 아들이 어른의 계단을 오를 정도로 커버렸다니. 이 엄마는 약간의 쇼크~”

꺄학~, 하며 부끄러움에 어머니는 몸을 움츠린다.

엄마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그전에 이건 오해라고! 절대적인 오해라고! 멋대로 착각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마! 나 어느새 인가 나쁜 놈으로 돌변하고 있는 거 같잖아!”

버럭 버럭 화를 내자 어머니는 장난스런 웃음을 띠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럼 편히 쉬다 가렴?”

~”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 라는 시선을 보내자 수연은 알겠어요. 라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관경에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위에 앉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퇴장하고 방안에 남은 두 사람.

조용한 침묵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수연은. .

 

다시 한 번 컴퓨터를 [조사] 하고 있었다.

왜 또 남의 컴퓨터를 탐색하고 난리야! 너라는 여자는!!!!”

우와, 야애니만 모아 놓은 줄 알았더니, 일반적인 실사 동영상도 있구나? 이 누나는 안심했단다.”

언제부터 네가 나의 누나였냐! 그리고 그만 두지 못해?! 찾으면 됐지 재생은 왜 하는 거야!”

동생의 취향을 알아두는 것도 누나의 의무라고 생. . . .”

웃기지마! 너는 그저 그 소재로 나를 몇 달 동안 놀려먹을 생각이잖아!, 누가 모를 줄 알아?!”

소년의 말이 정곡을 찌른 듯 그녀는 뜨끔 하며 혀를 차더니 조용히 컴퓨터를 종료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컴퓨터가 부팅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위이잉 하며 본체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 조용한 침묵 속에서 소녀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 진짜 요즘 고민 있어?”

"…….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

"아니, 너 방학이 끝나고 나서 요즘에 멍하니 있는 게 더 심해졌잖아.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너는 뭔가 기운이 없어 보였어. 나를 속이려고 노력해도 훤히 보인다고. “

숨을 들이쉬고 수연은 말을 이었다.

언제나 너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못 속여.”

", 잠깐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잡지 못하겠는데? 이건 무슨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겨? “

갑자기 진지해지는 수연의 태도에 소년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감 잡을 수 가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궁금증을 말했다.

", 설마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생긴 거야?"

, 무슨 소리야 그거, 장난 집어치워 라고. 나 참나 너답지 않게 그게 무슨 말이냐.”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진지하다.

저것이 결코 자신을 놀리기 위한 장난이라고 보기에도 미묘했다.

하아, 역시나 저 여자는 속일수가 없는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냐.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 다 거나. 그런 연애감정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 아니야. 거기에 나는 딱히 고민 하고 있지도 않고.”

그래?, 그렇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뭔가 혼자 끙끙 앍고 있나 했더니, 아니었구나. 다행이야.”

어째서일까.

평소에는 자주 볼 수 없었던 그녀가 남을 걱정하는 모습에

소년은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여태 이 녀석이 이렇게 예쁘게 보였던 적은 있었던 걸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녀가 여자라고 느껴지는 순간 이었다.

그 뒤에 자연스럽게 수다가 이어졌다. 학교생활을 시작으로 재미있었던 집안의 에피소드 까지 곁들여가며 낄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주 격지 못하는 황당한 사건들과 짜증났던 일들을 서로에게 털어 놓음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작은 짐들을 서로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시간이 10시가 넘어갔다.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시간이 흘러가는 줄 몰랐던 두 사람은 시계를 본다.

시계를 바라보며 소년은 말했다.

이제 가야하지 않아? 시간도 꽤나 늦었는데.”

그러자, 소녀가 서슴지 않고 말하길.

나 여기서 잘래.”

뭐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자고 간다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어차피 내일 들고 갈 교과서 다 챙겨들고 왔으니까 걱정 없어. “

어이!!”

"그렇게 나랑 같은 방에서 자기 싫어? “

"........"

어쩜 이리 자기 멋 대로란 말인가. 정말 자기중심적인 여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를 미워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녀의 마음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곁에 있고 싶었구나.
여태까지 참아온 그녀가 참 장하기도 했다.

그는 쓴웃음을 띄우며 크게 숨을 내쉰다.

마음대로 혀라. 대신 나는 침대에서 자고 너는 밑에서 자는 거다. 오케이?”

상관없어, 손님이라고 해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양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하여 이성친구와의 하룻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눈부심에 수연은 눈을 뜬다.

창밖에서는 맑은 태양이 떠서 커텐도 치지 않은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코를 골아가면서 까지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서로 알고 지내 온지 오래지만, 이렇게 같은 방에서 자기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잠자는 동안 덮쳐 진다거나 그런 것을 기대 했었지만, 애초에 그럴 배짱이 없는 녀석이라는 것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의 마음도 깨달지 못하는 이런 멍청한 녀석의 얼굴을 보자니 이걸 때릴 수도 없고.

괜한 화풀이로 수연은 책상에서 싸인펜을 꺼내든다.

어디 한번 맞쫌 봐라.

수학여행 갈 때 마다 쌓아온 낙서 실력을 보여주마.

끄적 끄적..

판다처럼 눈가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주고.

벌려진 입 사이에 보이는 하얀 이빨을 검게 칠한 다음

흉터처럼 막대기 몇 개를 살포시 그려준다.

마지막으로 저는 바보입니다. 뒤통수 갈겨주세요. 라는 문구를 가볍게 적어 두고서 작업은 끝난다.

싸인펜 뚜껑을 닫으며 원래 자리에 몰래 돌려놓은 다음. 수연은 엉망진창으로 낙서가 된 소년의 얼굴을 본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이 유치찬란한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웃으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그럴 수는 없다.

소리 없는 웃음, 그리고 어깨가 들썩이는 것과 동시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저 멍청한 모습도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걸 보아하니 .

나라는 여자는 정말 저 멍청이를 좋아하는 거구나 라고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으음..”

눈을 부비적거리며 소년은 눈을 뜬다.

눈부신 햇빛과 더불어 침대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수연은 일어난 그를 향해 아침인사를 했다.

이제 일어났어? 어서 일어나.”

, 으응. 그래야겠지?”

잠결에 비몽사몽 한 상태인 그의 모습. 수연은 무심코 지금 이 자리에서 덮쳐 버릴까 하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선택지에 발을 디디게 된다면 그야말로 데드엔딩이 될 테니 사양해둔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거실로 향하는 두 사람.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아침밥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하는 어머니는 소년의 얼굴을 보고 말을 잃어버린다. 어머니가 엉망진창으로 낙서가 된 소년의 모습을 보자, 수연은 어머니를 향해 윙크를 짓는다.

그러자 그녀의 메시지를 깨달았는지 어머니는 웃음을 참으며 모른척하고 넘어간다.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선 두 사람. 오늘따라 잠이 들 깼는지 소년의 눈은 약간 풀려 있었다. 그의 하찮은 모습을 보며 수연이 한마디 한다.

너 세수 했니?”

아니. 귀찮아 그런 거.”

정말 더럽게 시리.”

괜찮아, Don't mind, だいじょうぶ, 没关系

소년은 머릿속에 숨겨져 있던 유일한 4대국 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발설하는 잠재능력을 발휘한다.

언덕에 발을 내딛는 순간 소년의 잠은 순식간에 달아났다.

왜냐면 그가 시선을 향하는 곳에

그 소녀가 서있었으니까.

그녀가 소년의 앞에 다가온다.

점점 다가 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옆을 스쳐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소녀는 낙서된 소년의 얼굴을 보며 쿡 하고 웃어 버린다.

그것도 모르는 소년은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어!!’

이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여태까지 무표정했던 그녀가 드디어 미소를 지어주다니 말이다.

3초간의 아주 짧은 시간.

소년은 여태까지 만났던 것 중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뭐가 또 그리 좋아서 헤벌레 거리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

"좀 전에 지나간 여자애 보고 그런 거지? “

에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뭐가 그리 의심 많아? 흐흣

어디를 봐도 그 애 때문이잖아. 라고 속삭이며 수연은 고개를 획 돌린다.

자신을 비웃은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소년은 마냥 좋을 뿐이었다.

 

그저 즐겁기만 했던 고교생활은 너무나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방학이 끝났나 싶으면 어느새 인가 시험기간이고 시험이 끝났나 싶더니 그다음 시험이 기다리질 않나.

이제 시험이 끝났다 싶으면 어느새 방학이 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졸업을 하고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좀 전까지 같은 교실에서 수많은 추억을 쌓아온 친구들과 서로 뿔뿔이 흩어져 어느덧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자신과 학교생활을 함께 해주었던 교복을 벗어 던지고 소년은 사복을 차려입은 후 가방을 둘러맨다.

이제부터 있을 대학교 생활.

비록 전문대학으로 입학하게 되었지만, 남은 2년 동안 열심히 공부 해볼 생각이다.

그전에 군대부터 해결해야 할까나…….

이것저것 생각에 잠기며 그가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그는 언덕을 바라본다.

더 이상 그가 이곳을 건널 이유는 없다.

대학교는 이쪽 방향이 아니라 반대쪽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고쳐 맸다.

대학에 도착한 그는 커다란 교문을 지나서 강의실을 향해 이동했다.

고등학교에 비해서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의 대학교의 웅장한 모습에 그는 감탄했다. 그전에 몇 번이나 이 학교에 견학을 보러 온 적이 있었지만, 이 규모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 그것은 앞으로 천천히 해가면 될 일이고. 그는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다지 큰 교실은 아니었지만 나름 규모를 자랑하는 교실이었다.

여기저기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이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교수가 들어오고 그것으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강의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 수업 따위 나중에 나가서 어디에 써먹을 대도 없으니까.

그렇게 6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강의가 끝나고 곧이어 시작될 강의는 이론 수업이 아닌 실습수업이기 때문에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했다. 가방과 책을 들고서 실습실로 이동하던 도중이었다.

…….”

그 순간 그의 시간은 멈춰 버린다.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강력한 감정. 도대체 이것은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언덕의 그녀…….

그녀 또한 강의실로 이동하고 있는 도중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 존재를 기억 하고 있을까.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와 교차하는 그 순간 까지

3…….

그렇게 짧게 느껴졌던 그 시간이

지금은 이렇게나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조금만 더 라고 고집을 피우고 싶었지만 시간은 무자비했다. 교복과는 다른 사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청순가련하다는 느낌 이라고 해야 할까.

교복을 입어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일정 시간 마다 강의실로 이동할 때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3초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기뻤다.

1년에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 만난다고 쳐도 18분밖에 안 되는 만남.

이 정도라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우야! 너 오늘 잘 만났다.”

, 우민선배! 갑자기 왜 그러세요!”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그의 어깨에 팔을 얹지 며 말을 걸어온 이 남자는 한 학년 선배인 우민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복잡한 여자관계를 가져왔다며 실컷 자랑하는 것이 취미인 선배이다.

좀 별난 면이 있는 그에게서 가장 웃기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에게는 이미 피앙세가 있다는 현실이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너 이거 안 고프냐?”

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까닥 까닥 거려 본다.

아니, 저는 그다지. 그리고 왜 제가 여자를 고파해야하는 건데요!”

뭐긴 뭐야! 따먹어야지!”

하면서 동그란 손가락 속에 검지를 집어넣는다. 선배의 변태스런 모습을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길.

미진 선배에게 이를 거 에요.”

! 그것만큼은 참아줘라! 미진이의 귀에 들어가면 나는 그 뒤로!”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진정하시구요. 저는 여자 소개받을 생각 없으니 그렇게 알아 두세요.”

그렇게 우민을 뿌리치자 우민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며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만지작거리더니 화면을 보여준다.

이 자식 너 이거 보면 절대로 그런 마음 안 생긴다?, 내가 아는 친구의 동생인데 이 녀석 아주 끝내주게 생겼어! 정말로 예쁘장한 게 귀엽다니까? 나라면 이 녀석을 너에게 소개 해줄 수가 있지!”

나참나, 됐다니까요. 어차피 저에게는 이미…….”

언덕의 그녀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생각이.................

그 순간 그의 사고는 정지 된다.

휴대폰 화면 속에 띄어진 단 한 장의 사진 .

기다란 검은 흑발의 머리카락에

뽀얀 피부..

그리고 청순한 외모를 지니고

가련하게 앉아있는 사진속의 여자는..

어디를 봐도 '언덕의 그녀'였으니까.

덥석!

선배, 저에게 찬스를 주세요.”

후훗, 그럴 줄 알았지.”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 올리는 우민 선배였다.

 

 

드디어 언덕의 그녀를 소개 받기로 한날이 다가 왔다.

그는 이날을 위해 준비 해온 모든 것을 쏟아 붙기로 하였다.

이날을 위해 사둔 왁스.

이날을 위해 장만해둔 간지 뽕빨 나는 옷들

이날을 위해 산 향수와

이날을 위해 조사 해둔 만약을 위한 데이트 코스.

이날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의 발을 멋지게 보이게 해주는 신발과

거기에 어울리는 마법의 키 높이깔창을 깔고서 그는 집을 뒤로 했다.

여태까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러지 못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아는 선배의 소개로 말을 하게 되는 거라면 이야기는 별개가 되는 것이다.

예전부터 그녀가 신경 쓰여 왔던 그에게는 이것은 너무나도 큰 찬스였다.

이것은 던전앤파이터에서 심심해서 지옥파티를 돌았더니 에픽이 뜨는 [찬스]인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것을 계기로 그녀와 친해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큰 이득이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카페. 깨끗하면서도 상큼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게였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자 눈에 띄는 자리에 우민선배가 앉아 있었다.

선배도 그를 발견한 듯 기쁜 듯 손을 흔들어 주자, 그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저 긴장돼요 선배!”

하핫! 괜찮다 후배여! 솔직한 마음으로 대하면 잘될 것이야!, 무엇보다 상대는 난이도가 높은 히로인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랄까, 선배 갑자기 무서워 보여요.”

사소한 것은 신경 끄도록 해!, , 이제 곳 있으면 그녀가 올 거야. 간장게장 빨아먹는 심정으로 긴장타고 있으라고.”

그나저나 왜 저는 쓸 때 없이 긴장 타야 하는 거죠?”

스릴을 즐기는 거다.”

소개팅에도 스릴을 즐겨야 하는 겁니까.”

당연하고말고!”

말이 끝나는 순간 우민선배는 어디론 가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그의 시선도 우민선배가 향하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렇다. 드디어 그녀가 등장한 것이다.

 

아아, 그 순간 그는 말을 잃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귀엽고 예쁜 핸드백에 예쁜 다리가 드러나 있는 짧은 치마. 그리고 가디건을 몸에 걸 추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련한 모습이었다.

부서 질 것만 같은 저 얇은 다리.

살짝 누르면 터질 것만 같은 빨간 입술.

자신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깨끗한 눈동자를 비롯한 모든 것이 그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녀가 이쪽을 발견하자, 우민 선배는 반갑게 손을 번쩍 들며 흔든다.

아아, 정말 흥분되었다.

그녀가 이쪽을 향해 한발자국 다가 올 때 마다 거기에 맞춰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여태까지 3초 동안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그녀와 드디어 제대로 대면 할 수 있다.

이보다 행복하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여기는 내 친구 동생인 최지연이고 여기는 내 귀여운 후배인…….”

그렇게 그녀가 자리에 앉자, 선배는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진행한다.

과연, 그녀의 이름은 지연이라고 하는구나.

정말 예쁜 이름이야. 하고 소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본다.

잘 부탁해요, 지연이라고 해요.”

"하하! 저야 말로. “

후배인데 존댓말은 좀 그렇지 않아? 하고 우민선배가 찔러오자, 소년은 긴장을 풀며 다시 말투를 고친다.

그 뒤로는 우민 선배의 자연스러운 리드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애초에 연애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던 소년은 그에게 의지 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 인듯했다. 그래도 즐거운 분위기로 소개팅이 이어졌고, 시간이 꽤나 지났을 무렵, 우민선배는 시계를 보더니 의자를 빼며 드르륵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 나는 이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군!”

", 잠깐만요 선배! “

허겁지겁 달아나려는 선배를 붙잡으며 소년은 그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해요! 선배가 가면 저 긴장해서 아무생각도 안 난단 말이에요!”

이놈의 짜슥! 이정도의 시련을 견뎌야 사랑을 쟁취 할 수 있는 거다! 네 녀석은 그런 기본적인 것도 없단 말이냐!”

아니! 도대체 선배 어디로 도망가시려는 거예요! 약속 있다는 거 그냥 도망갈 구실을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죠!?”

그러자 마치 바보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는 우민선배. 가볍게 한숨을 쉰 후 그는 어김없이 씨익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까닥까닥 거린다.

나는 여친도 못 만나냐? 좀 있다가 오랜만에 미진이 하고 데이트 약속 잡았는데 너는 그런 나의 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참하게 부숴버릴 생각이냐? 네 녀석은 그러고도 인간이야? 어엉?, 내가 이날을 위해서 여태까지 참아오면서 사들고 온 이 콘돔을 위해서라도 그냥 얌전하게 보내주면 안되겠니?”

"선배, 그저 미진선배의 몸이 탐나는 건가요? 그전에 미진선배에게 그런 짓을! “

 

, 그것 때문에 녀석에게 미안한 짓도 해버렸지.”

?, 선배 지금 뭐라고 하셨..”

언제까지 그녀를 기다리게 할 거야, 어서 자리에 앉아. 라며 그의 등을 떠민다. 선배의 응원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당하게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민 선배는 카페를 등 뒤로 하였다.

정말 너에겐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수연아..”

문 앞에서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여성을 향해 말을 건다.

그러자, 수연이라고 불린 여성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까지 너를 좋아하는 걸?"

"하지만, 나에겐 미진이가. “

수연이가 그의 말을 막듯이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이미 364일 비가 내리는 날에 끝났잖아? 안 그래? “

, 하긴, 그랬지. 하지만 정말 고맙다. 네 동생을 저 녀석에게 소개 시켜줘서.”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지연이 한 테도 남자가 있었으면 했거든. 저 녀석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보니까,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러니까, 이번에 너의 후배와 사귀게 된다면, 그나마 자신감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365일 비가 내리던 날, 수많은 일이 있었던 과거기억을 회상하며.

나는 이제 미진이에게 가봐야겠다. 그럼 수고해라.”

, 잘 가.”

손을 흔들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갔다.

천천히 멀어져가는 한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여성은 눈물을 흘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선,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는 이것은

다름 아닌 눈물이었다.

 

 

그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 이었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고, 그 소리에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강의가 들어있지 않는 즐거운 휴일이다.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 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고 머리를 감으며 이빨을 닦고 나온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머리를 정리한 다음.

오늘을 위해서 준비해온 간지나 는 옷과

오늘을 위해서 새롭게 장만해놓은 신발과 더불어

예전보다 훨씬 더 높은 키 높이깔창을 장착하고서 그는 위풍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그녀와 사귀게 된지, 1년의 세월이 지났다. 우민 선배의 소개팅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녀 쪽에도 이쪽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몇 년간 함께 해왔던 3초간의 추억들을 잊지 않았던 그녀는 서슴없이 그의 마음을 받아 들였고, 지금은 이렇게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앞으로 있을 그녀와의 데이트에 그는 입고리가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오랜만이네?”

뒤에서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 그곳을 향해 그는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는 과거에 친하게 지내던 이성친구가 반가운 얼굴로 서있었다.

? 수연이 아냐?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으으응.. 잘 지냈지. 그런 너는, 오늘 어디가? “

뭔가 조심스러운 그녀의 말투에 그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한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

그것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었던 걸까. 이쪽의 대답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했던 이 소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상냥한 거짓말은, 그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뿐일 테니까.

 

나 오늘 여자 친구랑 데이트야.”

그렇다고는 하나, 그녀가 상처를 입는 것은 어느 쪽이라도 달라지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 아아, 그래? 하하! 그렇구나! 여자 친구 생겼구나? 하핫! 이 녀석 제법인데? 안보는 사이에 애인을 만들다니!”

싱글벙글 웃으며 기쁜 듯이 그의 등을 퍽퍽 때린다.

이봐! 아프다고! 그만 때려! 나는 이제 가볼 테니까 그럼 수고해라?”

행복……. 해야 돼.

등 뒤에서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

그것은 언뜻 듣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겠지만, 그에게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리곤,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등 뒤로 하고서, 그는 약속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기다렸지? 지연아~”

손을 흔들며 달려오자 지연은 조금 삐진 얼굴로 말했다.

그나저나, 왜 그렇게 늦게 오셨어요?”

그렇게 추궁을 해오자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하길.

하핫! 고교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늦어버렸어.”

설마, 오빠 다른 여자 만난 거 아니죠?”

", 여자이긴 하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야. “

지긋이 하고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강하게 응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싱긋 하고 미소를 짓더니 와락 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저는 오빠를 믿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을게요. 그럼 가 봐요.”

, 그럼, 오늘 내가 너를 기다리게 한 벌로. 내가 재밌는 곳에 데려다 줄게.”

에에? 진짜에요? 어디요?”

후후, 그것은 비밀이야.”

아아 치사해! 가르쳐줘요!”

안돼에에~”

 

 

그것은 하루에 3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만남.

그것은 만남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도 미묘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만남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덧 서로를 잊지 못하고

서로를 원하게 되며.

후에는 서로를 끌어당기게 된다.

아무리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다고는 한들.

이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이것은

 

운명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루에 3초 만나는 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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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현창민

이멜:yzvvxkr@naver.com

연락처:010-671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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