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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12:45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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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기분은 어때?”

녹음기를 켜고 태환은 질문을 하며 성연을 응시한다.

태환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필 깎는 것을 멈추지 않는 성연.

 “오늘은 뭘 했어?”

 “밥은 먹었니?” 등등의 늘 하던 질문을 계속하는 태환.

여전히 말없이 연필만 계속 깎는 성연을 보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답이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답을 해주겠지. 라는 기대감으로 항상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 그리고 그 대답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준비하지만

오늘도 성연은 입을 굳게 닫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멈출 수 없다. 듣는 것과 말하는 법을 잃어버릴까봐 헬렌 켈러의 설리번 선생의 마음으로 마음을 열러주길 기다릴 뿐,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울림 없는 메아리는 계속 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을그리고 여전히 그녀의 근처엔 그녀의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을…….

지금 그녀 공간엔 자신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여리고 안타까운 아이를 위해 멈출 수 없다.

대답을 하지 않는 성연을 보고 따뜻한 미소를 짓지만 그 속의 아쉬움과 성연에 대한 안타까움의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녹음기를 끄고 종이를 파일에 넣고 볼펜과 녹음기를 챙겨 방을 일어날 채비를 하는 태환의 귀에 작게 들리는 목소리. 태환은 놀란 표정을 하고 성연 쪽으로 고개를 든다.

 “뭐라고? 혹시 다시 말해 줄 수 있니?”

다시 말 안 해주면 어떡하지? 너무 일찍 준비를 했어.

얘가 무슨 말을 했을까? 의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성연아 아저씨한테 다시 말해 줄 수 있을까?”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성연을 보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말해주고 싶지 않구나.”

성연은 여전히 초점 없는 눈과 공허한 표정으로 감정 없는 인형처럼 앉아있다.

그녀에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의 주변엔 공기뿐이라는 것. 하지만 그 공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이것은 변하지 않는 그녀남의 공식이었다. 너무 모순적이 여서 의사인 그도 이해가 안 되지만 이해를 해야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해는 해야만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이해를 해야만 그녀와 그 주변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

 “연꽃 연, 네가 이름처럼 꿋꿋하게 버텨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태환은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성연 쪽으로 돌아 옆에 앉는다. 끊임없이 연필을 깎는 손을 잡고 말을 하는 태환, 성연은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들리지 않는 척 손을 슬쩍 뺀다. 그런 성연의 어깨를 씁쓸한 표정으로 토닥여주고는 다시 일어나 나간다.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람은 2층에서 내려오는 태환을 발견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가지 질문을 묻는다.

 “오늘은 어땠어요? 여전히 말을 안 하던가요? 손을 다쳤던가요?

 전에 난 상처는 거의 다 나았던가요? 안색은? 안색은 어떻던가요?”

태환이 내려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내는 가람은 어서 대답해주길 바라는 눈치이다. 당황하지 않고 익숙하다는 듯이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하나하나 대답해주기 시작한다.

 “오늘은 말을 했어요. 근데 제가 놓쳐버렸어요. 죄송해요.”

자신이 놓친 것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하고 말을 시작한다.

 “. 그림을 정말 멋지게 그렸던데요. 손이 거칠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는 듯 했어요. 여전히 소통은 안하지만 불안 증세는 없는 것 보니 상태는 저번보다 호전 됐어요.”

가람은 호전됐다는 태환의 말에 그제야 환하게 안도의 웃음을 짓는 다.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조금 있음 동석씨 오는데 오랜만에 같이 저녁식사라도 하시고가세요.”

태환은 정중히 거절한다.

 “아뇨. 동석이랑은 오늘아침에도 만났어요. 상담 있는 날은 항상 저희 병원에 오니까 질리게 봐서 저녁까지는…….성연이는 분명 이겨낼 거예요. 전보다 많이 강해졌어요. 앞으로 더 강해질 거예요. 그러니 걱정은 말고 오늘은 동석이랑 둘이서 오붓하게 드세요.”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현관문 쪽으로 향한다. 가람은 그런 태환의 마중을 나가고 차가 대문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는다. 날씨가 쌀쌀한지 옷깃을 여미고는 2층 성연의 방 창문을 쳐다본다.

 “다행이다.”


 2층에 있는 다락방에서 혼자 있는 성연은 고요함속에 있는 고독이 익숙한 듯 깎은 연필로 그림을 그리려다 말고 

 ‘연꽃……. 이름…….’ 태환의 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내 손이 멈추고, 앞에 있는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저씨 간지 한참 됐는데

이내 자신의 옆에 앉은 엄마를 보고 7살 아이가 된 듯 해맑게 웃는다.

항상 보지만 항상 반가워하는 성연을 향해 다정하고 따뜻한 웃음을 짓는 아라.

 “엄마가 그냥 계속 옆에 있으니까 좋다 어디 안 갈 거지?”

옷자락을 쥐고 어린 아이 같은 티 없는 맑은 미소를 짓는 다. 끄덕임에 안심하고 다시 그림을 그린다.

태환이 가고 얼마 뒤, 가람은 물과 약, 죽이 올려져있는 쟁반을 들고 성연의 방 앞에 망설이듯 계단 한 개를 두고 서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다 잡았는지. 계단을 올라간다.

 “성연아 약 먹을 시간이야

약간 긴장됐는지 떨리는 목소리, 자신의 목소리가 떨렸다는 걸 인지했는지 가람의 표정은 어느새 울상이 되어있었다. 같이 산지 16년이다이 아이의 엄마가 된지 16, 이 이이가 나의 딸이 된지 16년이었다.

근데 여전히 가람은 성연이 얇은 유리인 듯, 순간의 실수로 깨져 버릴까봐. 붙잡으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연기가 돼서 사라져 버릴까봐 늘 성연을 대할 때는 항상 조심조심 숨도 크게 못 쉰다

연기처럼 되어버리지 않게 깨져서 다시 살릴 수 없는 유리처럼 되지 않게.

 ‘내가 너를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니 네가 진짜 내 딸이었으면 그러면 너도,

나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텐데.’

가람은 그림 그리는 성연과 그녀의 방을 훑어본다.

성연의 방바닥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그림들과 녹슬어있는 커터 칼이 몇 개보이고 새것 같이 멀쩡한 연필 깎기, 청소 안한지 꽤 됐는지 책상위엔 먼지가 뿌옇게 있고 연필을 깎은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붙었다 땐 것 같은 반창고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책장엔 연꽃과 놀이터, 혼자 있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들이 있고 이불엔 낡아 해진 쪼그만 곰 인형과 베게위엔 낡은 갓난아기가 입을법한 옷도 있었다.


 자신에겐 성연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지만 성연 스스로에게 자신은 사막 그 자체였다. 아니 사막 속에서 간간히 오는 비를흡수하고 며칠, 몇 달을 버티는 선인장이겠지. 10년도 더 된 일의 충격에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1층에 자신의 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다락방에 스스로 고립시켜 지내는 성연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그림을 그리던 성연은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내 눈에 눈물이 가득 맺힌다.

 “엄마 어 엄마그림 그리던 것을 멈추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라를 찾는 성연.

 “엄마가 가버렸잖아…….엄마가…….엄마가 가버렸잖아

가람은 쟁반을 바닥에 놓고 발작하듯 울부짖는 성연에게 달려가 감싸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라를 잃은 것처럼 울부짖는 다. 목이 다 갈라져 쇳소리가 나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의 진짜엄마를 찾아 허공에 손을 젓고 멀어진 건지 아니면 없어져 버린 건지 모를 엄마를 찾아 헤맨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비 맞은 강아지마냥 오들오들 떨며 가람의 팔뚝을 거칠게 잡는다. 그런 성연을 더욱 더 세게 품으며 달래준다. 자신의 팔에 상처가 나는 지도, 옷이 구겨지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엄마는 어디 안가 여기 있을게. 괜찮아 괜찮아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이 아이에게, 나의 딸 성연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라는 게, 이게 최선이고 그리고 이게 한계라는 것이 슬퍼 눈물을 흘리며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는엄마를 외치며 울고 있는 성연을 쓰다듬으며 달래준다. 그러고 한참이 지난 후, 안정됐는지 잠이든 성연을 눕히고 담요를 덮여주고는 눈물로 엉켜진 얼굴을 정리해주는 준다.

거칠고 앙상해진 성연의 두 뺨, 연필을 깎다 칼에 베여 생긴 상처들을 어루만지다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준다. 깨지 않게 조심하며 뿌옇게 쌓인 먼지들을 닦고 쟁반을 챙겨 내려가려는 데, 방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박스가 눈에 띈다.

 

 “여보 2층에 있어?”

마음이 미어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비극은 누가 먼저 시작한 거 일까?

가슴이 죄여오지만 자신을 찾는 동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1층으로 발길을 돌린다.

계단 중간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

 “언제 왔어요. 왔으면 말을 하지……. 저녁식사 준비할게요.”

동석은 그런 가람을 껴안아준다.

 “방금 왔어라고 대답하며 안고 있던 가람을 놓아주고는 어깨에 손을 올려 얼굴을 살피곤 이내 걱정스런 표정으로 변한다

다시 안으려다 가람의 손에 들린 쟁반을 보고 대신 들어준다.

차마 울었어? 왜 울었어? 성연이 상태는 어떻데?’ 라고 물어보지 못하고

 “밥은 먹었어? 오늘 날이 유난히 춥더라고. 꽃샘추위라더니

 “그러게…….와인 마실까요?”

 “그러자고

 “옷 갈아입고 와요. 따뜻한 물 받아놓을게

쟁반을 자신이 다시 들려하는 데 동석은 놓아주지 않는다.

 “이거 갖다놓고 씻을게동석은 부엌에 쟁반을 놓고 방에 들어간다.

저녁식사 후 와인을 마시는 데 동석과 가람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동석이 먼저 입을 연다.

 “성연이는 미로 속에 들어간 거야. 물론 본인 의사가 아닌 주변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미로 속에 들어간 거지만…….”

가람은 붉은 빛이 도는 와인을 보고 있다.

 “미로가 너무 크고 넓어서, 그리고 너무 복잡해서 아직 해매는 중인거야. 미로는 우리가 도와줄 수 없지만 응원은 해줄 수 있어 그리고 언젠가 출구로 나올 거야 분명히…….”

 “언젠가…….” 동석의 말에 작게 반응을 보인다.

 “말 그대로 언젠가. 당신은 성연이한테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런 멋진 엄마야 그러니 이제 당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게 저 아이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더 좋은 것 같아. ‘언젠가가 언제일지 모르잖아 그러니 이제

 “안 돼요동석의 말에 단호하지만 그 속엔 슬픔이 담겨있는 대답,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다 마시고는 말을 이어간다.

 “7년이에요. 7년 동안 시험관만 20번 넘게 했어 그래도 아이는 안 생겼고, 그때 당신도 동의 했잖아요. 몇 달은 엄마라 불러주지 않는 저 아이에게 실망도하고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기도 했어요.”

 ‘그래도 괜찮다 왜? 나는 이 아이 엄마니까

 “하지만 버텼어요. 지금까지…….”

동석은 씁쓸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

 “진전이 없잖아 우린 늪에 빠졌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게 빠져들 뿐이야. 당신도 나도 그리고 저 아이도 이제 지쳤어. 당신은 16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언젠가

동석이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을 끊는다.

 “당신이 언젠가라고 했잖아요. 언젠가라고…….”

 “그 언젠가 때문에 16년을 버텼어 그리고 그 언젠가는 아직도 안 왔고,

그거면 된 거야 그러니

 “아니요 전 그 언젠가를 믿어요. 당신말대로 미로 속에서 혼자 힘으로 출구로 나올 날을 기다릴 거예요. 7년 동안 지옥 속에 있던 저를 구해준 아이예요. 16? 아니 20, 30년도 괜찮아요. 저한테는 성연인 그런 존재예요. 언젠가

말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치는 가람, 성연을 처음 봤을 때 저 아이라면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겠다. 내가 꿈꾸던 단란한 가족 요리하는 엄마,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안기는 딸. 꿈만으로 끝날 것 같았던 것을 이젠 이뤄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간, 정말 언젠가는 꼭…….”

아주 힘겹게 한자 한자 곱씹으며 자신에게 말하듯,

동석에게 자신의 뜻과 진심을 전한다.

 “꼭 연꽃처럼 맑고 화려하게 꽃피우는 날이 올 거예요.”

주문과 같은 이 말, ‘언젠가.’ 언젠가는, 언젠간 꼭, ‘언젠가라는 이 불안정한 단어에 기대서 꿈은 와장창 깨졌으며, 단란한 가정은 없었고,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딸도 없지만, ‘언젠가저 아이가 나에게 꿈을 안겨줄 것이다. 지금은 악몽을 꾸는 거니까. ‘언젠가는 악몽이 행복한 꿈으로 바뀔 것 이다. 그렇게 그녀에게 언젠가라는 단어는, 그리고 성연이는 마음에 위안을 주는 진통제 혹은 안정제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니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제발

동석은 눈물을 흘리는 가람에게 다가가 안아준다.

 “당신이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그전까진 다신 이런 말 안할게

그녀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언제든지가 절대로 안 올 것이란 걸 알지만 오늘도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 동석은 2층에 올라간다.

연필을 깎으며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 해맑게 웃고 있는 성연을 보고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간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표정과 속으로 오늘도 삼킨다.

 “이거는 엄마랑 그림 그릴 때고, 이거는 엄마가 연필 깎아줄 때, 이거는

성연은 신나게 그림에대해서 설명을 하다가 눈물이 가득 맺힌다. 목이 메여 말을 끝까지 잊지 못 하고 눈물을 닦는 데, 손에는 연필자국이 까맣게 묻어있고 언제 베였는지 모를 상처들이 손가락 여기저기 나있었다. 엄마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는 성연은 닦다말고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 이상해닦아내던 손이 멈추니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상처가 안 나아 약을 발라도 자꾸 덧나

사실 약을 바르는 것은 자신이 지쳐 잠이 들었을 때, 가람이 붙여주는 밴드가 다이지만 상처가 낫지 않는 것은 맞다. 그 상처가 자신의 마음에 난 상처인지 손가락에 난 상처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그 두 상처 모두 덧나고 또 상처 나고 또 덧나고 곪고 또 곪아 더 깊어진다는 것을, 다 낫는 다 한들 흔적도 없이 사라지진 않는 다는 것을.

 “너무 아파 자꾸 여기가

손의 상처를 보던 성연은 무언가에 턱 막혀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아파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자신을 괴롭히다가 서서히 그 울음은 멈추고 자신의 다리를 감싸 안고는 손톱으로 두 팔과 다리를 긁기 시작한다. 모든 것에 예민해진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공기와 자신의 머리칼, 피부에 스치는 옷까지 모든 감각에 극도로 예민해져있는 성연은 팔과 다리에서 멈추지 않고 목과 얼굴을 긁기 시작한다.

소리를 내어 울진 않지만 눈물은 계속 흐르고 생채기가 생겨 피가 나도록 긁는다.

울고 있지만 울고 있지 않았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았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았다.

손을 입에 들고 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주변을 경계하듯 둘러보고 무릎을 꿇어 바닥을 쓸어 자신의 그림을 모으더니 찢어버린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 아라에게 다가간다.

 “엄마, 엄마 아무데도 안갈 거지? 아무데도 가지마. ?”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간신히 말을 이어가다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뻗는 아라에게 안긴다.

 “제발 부탁이야 응? 엄마 아무데도 가지마.”

품에 안겨 더욱 더 간절해진 목소리와 말로 아라를 더욱 더 세게 끌어안으며 품에 자신이 안겨있음을 확인하듯 옷을 꽉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다안심한다는 듯 눈을 감는데, 두 눈 가득 맺혀있던 눈물이 아라의 옷에 스며든다.


 늦잠을 자버린 가람은 급하게 성연의 아침 식사와 약을 쟁반에 담아 2층으로 가다가 동석과 마주친다.

 “아직 안 갔어요? 성연이 보고 왔어요?”

 “어 이제 가려고 근데 지금 안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기일이라 예민해서 그런 거 일거예요. 혹시 오늘 일찍 오실 수 있어요?”

 “아 오늘이었나? 일찍 와야지 1년에 딱 한번 있는 날인, 근데 날씨가 안 좋아서

 “그래서 걱정이에요. 운전 조심하시고 우산 꼭 챙겨나가세요

 동석은 우산을 챙겨나가고 가람은 쟁반을 들고 죽이 식을까 급하게 계단을 올라가다

멈칫한다. 방안에는 그림들이 찢겨져있고 커터 칼에 긁혀 가구들과 벽엔 긁혀있고 성연은 책상위에 쪼그려 앉아 커튼을 껴안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이 방엔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사는 것 같은 공간이었다.

온기가 없는 방에서 잠시 멈춰있던 가람은 천천히 발을 떼고 움직여 성연에게 다가간다.

공기가 흐르지도,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다 멈춰버린 느낌이다.

숨을 쉬고 있는지 시간이란 게 흐르고 있는지……. 모든 것이 멈춰버린 느낌이다.

모든 게 멈춰버린 이곳에서 성연은 멍하니 창밖을 보며 엄마가 왔을 때를 떠올린다.


 창밖을 보고 있는 성연의 눈에 대문을 열어주는 가람과 문을 들어오는 아라가 보인다.

오다말고 고개를 들어 2층을 쳐다보는 데, 성연은 마주치지 않으려 얼른 커튼 뒤로 숨어버린다.

자신을 버린 엄마, 나를 여기에 혼자 두고 가버린 무정한 엄마, 내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 이제야 온 야속한 엄마.

나에게 엄마는 아라뿐인데, 하나뿐인 가족인 엄마는 이 사람들을 가족이라 부르고 가람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

인정할 수 없다.

 “? 엄마는 여기 있는데 내가 왜?” 아마 영영 끝나지 않을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

 “? 이 아줌마가 내 엄마야?”

 “왜냐면 엄마가 그러니까.” 그 어떤 말로 설명을 해줘도 이해가 안갈 것이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사람이 성연이 엄마거든

눈물을 꾹 참고 메여서 잘 안 나오는, 아니 절대로 내뱉고 싶지 않았던 말을 하려니 더욱 막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 우리 연이를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니 이건 변명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혹 같던 이 아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내주고 혹을 떼어내 버리고 자유와 행복을 찾아 떠나려한다

저 멀리 빛이 보이는데 이 아이가 내 다리를 잘라버렸다.

그래서 빛을 보고만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제 잘린 다리로 절뚝절뚝 힘겹게 발을 떼서 희망을 품고 나아가보려 한다.

 “춥다…….성연이 이 사람들 말 잘들을 거지?, 성연이 잘 부탁해요.”

 “……. 안녕히 가세요. 성연아 안녕~해야지

 “엄마 가지마.” 아라는 울부짖는 어린 성연을 안아 등을 토닥여주며 말해준다.

 “아니야…….금방 올게 여기서 이모랑 있으면 엄마가 올게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의 분위기, 공기, 표정, 옷차림까지 모든 것이.

 ‘금방 온다며……. 열 밤 자면 온다며…….’성연은 이제 온 엄마가 미워서 그래서 1층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려가지 않는다. 후회한다. 그때 내려가지 않은 것을, 나를 데려가지 않는 엄마를 그 순간의 감정으로 만나러 가지 않은 것을 하지만 이미 흘러가버린 강물이니 돌이킬 수 없다.

며칠 뒤 보고 싶은 엄마는 안 오고, 보고 싶지 않은 할머니만 왔다. 집안은 소란스러웠고 한참 뒤, 2층에 올라온 가람은 박스를 주고 갔다.

 박스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누렇게 뜬 종이 박스,

보면 영영 엄마를 못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보지 않았다.

아라가 아니라 가람이 자신의 엄마가 될 것 같았다.

엄마가 준거라는 아줌마의 말에도 보지 않았다.

7년이 지나 내가 입양된 날 그리고 우리 엄마 기일.

보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서, 박스를 열어야 됐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럼 엄마를 잃으니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 영영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방 한구석에 있는 박스를 열었고 그 속엔 배냇저고리와 일기장이 있었다.

배냇저고리를 한번보고는 일기장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일기장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은 이 배냇저고리는 내가 입었던 것이고, 엄마는 나에게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나에게 온 이유도 그것이다.

아라는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위해, 나을 입양 보냈고, 그 죄책감과 미안함에 성연이 입었던 배냇저고리는 간직했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커튼 뒤로 숨어버렸던 날. 아라는 더 이상 들을 수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이제 가람이 이모, 아줌마도 아닌 엄마라 불어야한다는 것…….

일기장을 보고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떨어지고 종이에 스며들어 글씨가 번진다.

번지면 엄마의 흔적이 없어질까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보지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

 

 ‘안녕? 우리 딸 여기 원장님이 스님한테서 이름을 받아왔어 우리 딸 이름은 이제 이야. 너무 예쁘지? 연꽃 연인데, 이 연꽃이 세상의 가장 더러운 곳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런 것에 물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맑고 깨끗한 꽃으로 피워난데, 그래서 거기에서는 연꽃은 아름답고 신성하다고 여겨진데. 엄마는 아빠한테 버림받고 홀로 너를 낳았지만 하나도 후회되지 않아. 왜냐면 너를 낳고 전보다 더 행복해졌거든. 넌 엄마에게 그런 존재야. 행복을 주는 존재.

엄마가 앞으로도 너랑 둘이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은 데, 우리 연이도 그렇지?’

벽에 기대어 자신의 가슴속 깊숙이 껴안는 성연, 더 이상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도 않는 다. 벽에 거칠게 머리를 박아도, 일기장의 손이 하얘지도록 세게 잡아도, 다른 손으로 답답한 가슴과 안고 있는 일기장을 주먹으로 때려도,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발이 바닥에 사정없이 굴려져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 엄마…….”

 

 ‘안녕…….연아……. 아 이젠 성연이가 됐지. 엄마가 모질게 떼어내서 미안해. 금방 온다는, 열 밤 만자면 갈 거라는 그런 지키지도 못할 약속해서 엄마가 많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도 미안해.’

울음소리는 다락방의 벽에 부딪혀 날카롭게 성연의 몸을 스쳐 옷이 찢어지고 피가 난다.

자신의 울음소리가 너무 구슬퍼 성연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너무 잔인해 너무 잔인하잖아 엄마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도 더 아파오기만 할 뿐이었다.

연꽃. 연아, 연꽃의 꽃말이 여기서는 순수한 마음 그리고 당신이 참 아름답습니다.’인데, 다른 곳에서는 당신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저를 구해주세요. 진즉에 알았으면 이 이름으로 짓지 않았을 텐데. 너랑 나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자는 지키지도 못 할 말해서 미안해그리고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해. 엄마가 연이 많이 사랑해.’

이 모든 순간들이 아스라이 지나갔다.

가람은 커튼을 앉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성연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겨준다.

쓸어 넘길 때 마다 모래처럼 먼지인지 모래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떨어져나갔다.

 “성연아, 식기 전에 죽 먹자

 

 어릴 땐, ‘당신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였다면,

몸이 크고 나이도 있는 지금의 나는 저를 구해주세요이다.

몸도 커지고 나이도 들었지만 정신은 아직 7살 때에서 멈춘 것 같다.

아니다. 그 일기장을 봤을 때 나의 삶은 멈추었다.

산송장. 나에겐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이고, 나에겐 연꽃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의 이름에 연꽃이 있긴 하다.

근데 엄마를 생각하느라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나 좀 살려주세요. 제발…….’이다. 아름답고 순결한 연꽃, 하늘을 향해 핀 맑고 깨끗한 꽃은 없다.

연꽃의 생명은 3일이다. 첫째 날은 오전에 피고 지며, 둘째 날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향기도 널리 퍼진다. 그리고 셋째 날은 첫째 날처럼 피다말고 잎은 떨어지며 꽃이 물러난다고 한다

내가 연꽃이면 나에게 둘째 날,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은 언제인가.

그 향은 다 어디로 갔나. 둘째 날은 안 오고 셋째 날이 다가온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연꽃 연이아니라 그리워 할 연인 것 같다.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잊지 못 한다보내지 못 한다.

내겐 연꽃은 없었고, 엄마도 없다.

만약 내가 연꽃이면 꽃잎은 떨어지고 이제 물러나야할 때이다.

 “성연아 오늘 밖에 나갈까? 오늘…….너한테 중요....

 “연꽃…….”

 “아 미안해.. 옷 금방 닦아줄게..”

가람은 죽을 뜨다가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성연을 보고 놀라 죽을 옷에 묻히고 만다.

성연의 눈치를 보며 휴지를 들고 닦는다.

 “엄마또 아주 작게 웅얼거린다. 이제 갓 말을 때는 아이마냥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고 내뱉지 못하겠다. 7…….아주 어릴 적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가람에게 하고 싶지도, 하게 될지도 몰랐다.

항상 나의 곁엔 엄마가 있었으니까. 아라는 항상 성연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내 앞엔 문이 보인다옛날의 나였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삶을 반으로 잘라 그 속을 들여다본 나로서는 눈앞에 있는 이 문의 손잡이를 잡아볼 용기가 생겼다. 그 용기에 더 큰 용기를 더해 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통해 나와 보니 항상 나의 곁에 있던 엄마가 없어졌다.

아니 원래 없었다. 없어진 게 아니라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이 맞다. 엄마가 안보이니 아까 문의 손잡이를 잡아 돌리던 용기들이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겁이 나고 무서워졌다.

너무 두려워서 다시 들어가려 등을 돌려 문을 보니 활짝 열려있었고 그 곳에서 엄마가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보이니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지금 엄마 품에 안기면 7살 때의 어리석은 나로 돌아가겠지. 순수하고 티 없이 맑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그 어리석은 때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엄마에게 등을 보이기엔 나는 너무 나약하다.

다시 엄마에게 다가가려 발을 떼는 데, 누군가가 엄마의 품에 안겼다.

 ‘누구지? 왜 내 자리를 빼앗는 거지?’ 의문도 잠시 그녀는 자신이 이 누군가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다.

이 누군가는 어린 나. 아라와 꼭 닮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엄마는 어린 나를 안아주었고,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었다. 그리곤 손을 잡고 등을 돌려 자신의 겉에서 멀어진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 어린 나와 함께 등을 돌렸다.

 ‘엄마..걔는 진짜가 아니야.. 내가 진짜야…….’

차마 이 말을 내뱉지 못했다. 발을 내딛지도 못했다. 가지 말라고 소리치지도 못했다.

내가 진짜인건 맞다. 근데 엄마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 버렸다.

잡는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내가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는 것도, 이제 보내줘야 할 떼라는 것도 다 전부 다 알게 돼 버렸다그리고 이것들을 알게 되는데,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성연은 안고 있던 커튼에 묻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돌려 자신의 옷을 닦는 가람을 본다.

아기를 갖지 못 해서, 너무 힘들어서 나를 입양한 이 여자.

나를 입양하고 자신은 더 불행해졌지만, 네가 내 딸이라 행복하다는 여자.

나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여리고 안타까운 여자.

아니 이젠 이 여자, 아줌마, 이모도 아닌 나의 엄마.

이 문을 열고 나오는 데 걸린 시간. 16. 그동안 사랑으로 감싸주고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엄마.

 

 “엄마

성연의 말에 옷에 묻은 죽을 닦던 가람의 손은 멈췄다.

고개를 들어 성연을 보고 싶지만 다시 한 번만 더 말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자신에게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확인했을 땐, 그땐 정말 동석의 말처럼 나는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줬다라고 생각할까봐 그래서 이 아이를 놓아 버릴까봐 그게 두려워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성연의 말에 고개를 드는 가람, 근데 성연은 자신의 등 뒤 쪽을 본다.

성연의 시선이 닿는 곳, 가람의 곳에 시선이 있는 건 맞지만 가람을 보고 있진 않았다.

예상을 했지만 슬픈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어느새 눈물이 가득 맺힌 가람은 고개를 돌려 성연을 바라봤고, 성연은 언제 고개를 돌렸는지 다시 자신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눈에 맺혀있던 눈물을 흘러내렸고 성연이 보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눈물은 신경도 안 쓸 걸 알지만 그래도 가람은 빠르게 눈물을 훔친다.

 “비 온다.”

성연의 말에 다락방을 둘러보며 감정을 추스르던 가람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응 비오네.”

정말 오랜만에 같이 있는 시간. 성연이 발작을 일으키지도 자신을 밀어내지도 않는 이 시간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진 않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고요함속에 있던 고독함도 없었고

빗소리가 그들의 말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늦은 오후, 동석은 집으로 돌아와 비에 젖은 코트를 털고 현관문 앞에 놓인 제기세트들과 음식들을 보고는 가람에게 말한다.

 “비가 너무 와서 집에서 해야 될 것 같던데

 “그래요? 그럼 어쩌지?”

멀리서 들려오던 가람의 소리가 가까워진다. 부엌에서 현관으로 걸어오는 가람의 손엔 짐들이 가득하다.

 “소주가 없어서 시내 쪽으로 가서 종이컵이랑 사서가요. 제가 깜빡하고 안 샀네요.”

 “짐이 이렇게 많아 태환이는 곧 온…….”

말을 하다가 멈추는 동석은 가람이 아닌 그 뒤쪽을 쳐다본다.

가람을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동석의 시선이 닿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거기에 서있는 성연. 언제 씻고 옷을 갈아입었는지 깔끔한 모습이다. 그런 성연을 보고 동석과 가람을 적지 않게 놀란 눈치이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이것을 깬 건 동석이었다

 “아 춥다 옷 하나 더 입고 나와야 될 것 같은데

마치 성연이 같이 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을 건네 보지만 어색한 말투와 손짓, 표정을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놀란 표정의 가람은 이내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물론 동석의 말에 웃겨서 웃은 것도 있지만 16년 만에 처음이었다. 성연의 친엄마인 아라의 기일을 챙긴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같이 따라나서는 거였다.

너무 설레고 너무 감사하고 태환의 말대로 많이 강해진 것 같아서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 같아서 안도의 미소도 포함된 미소였다. 이전의 성연은 항상 기일만 되면 발작을 하곤 했다. 제사상을 엎는다거나 물건을 던지고 연필을 깎던 커터 칼을 휘두른다거나 그래서 다친 적도 있었다. 성연의 팔에 상처가 많이 난적도 있었다. 1층에 지냈을 당시 방안의 물건을 다 창문 밖으로 던지거나 유리란 유리는 다 부서 버리는 등의 발작을 일으켰었다.

그래서 집에선 제사를 못 지내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나갈 땐 또 상처가나거나 발작을 일으킬까봐 태환과 그의 부인이 와서 보모처럼 잠시만 맡겨두게 된 것도 그때부터이다. 다행히 발작은 점점 줄어들었고 지금은 스스로 씻고 옷까지 갈아입고 가겠다고 하니 가람은 지금 너무 행복하다.

 “제가 겉옷 챙겨올게요

라고 말한 뒤 성연의 마음이 바뀔세라 부리나케 방으로 가고 동석은 어색하지만 용기를 낸 것이 대견하여 웃으며 말을 건넨다.

 “비가오니 옆에 딱 붙어있어라

처음으로 두 사람은 부녀지간답게 우산이 더 있지만 굳이 한 우산으로 차에 같이 갔고 문을 열어 성연을 태워주곤 짐을 챙기려 다시 문을 닫으려 하다가

 “담요 가져다줄까?”라고 괜스레 말을 걸어보지만 역시 답이 없는 성연을 보고 다시 문을 닫으려한다.

아주 미세한 움직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성연을 보고 동석을 겨울의 비가 밉지도 않은지 그의 눈에는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꽃처럼 보일정도였다. 향을 머금은 색색의 꽃잎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쌀쌀하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맑고 산뜻했으며 포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주 짧지만 그 말을 들을 동석은 어제 밤에 말한 그 언젠가가 다가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젠가가 아니라 조만간또는 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 담요 가져올게

그렇게 가람, 동석 그리고 성연은 처음으로 가족처럼 한차에 타서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다 같이 시내로 나왔고 이유는 물론 아라때문 이였지만 모든 게 다 괜찮았다. 무슨 이유로든 이 아이가 용기를 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이 차안에는 비 때문에 춥고 습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다행히 비는 그쳐갔고 맞을 수 있을 만큼의 비였다. 도착해 내리려는 데, 가람은 성연을 쳐다봤고 떨리는 손을 보고는,

 “안내려도 돼.”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강요하진 않았다. 동석과 가람이 내리고 짐을 챙겨 산으로 올라갔고 성연은 혼자 차안에 남았다.


 떨리는 손이 야속해 치맛자락을 세게 붙잡았지만 구겨지는 치마가 더욱 슬프게 보였다. 치마가 구겨지는 게 슬펐다. 구겨진 게 치마가 아니라 마치 아라같았다. 원래는 선이 곱고 아름다운치마가 내가 구겨버려서 자국도 남고 아름다움을 잃었다

엄마도 그렇다. 네가 아니었음 이렇게 스스로 세상을 떠나 버리진 않았을 텐데.

아니 구겨진 치마가 아라가 아니라 자신인거였다. 구겨져 있지 않았다. 구겨질 이유가 없었다.

근데 내가 구긴 거였다. 이렇게 예쁜 치마를 내가 구겨서 망가져 버린 거였다.

 ‘비나 왕창 내려버리지

성연은 비가 그친 하늘이 야속했다. 자신의 눈물이 그쳐버린 비 때문인 것 같았다. 비가 내렸다면 빗소리라도 들렸다면 그러면 눈물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야속하게도 비는 가랑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혼자 있는 차안. 근데 혼자가 아닌 것만 같았다. 엄마가 보이진 않지만 옆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차안에서 나왔다. 우산도 없이.

성연은 하늘을 보고는 아라가 있는 곳으로 갔다. 길은 모른다. 한 번도 안 가봤다. 근데 왠지 알 것만 같았다.

걸음을 떼고 움직이기로 마음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성연의 앞엔 전에 없었던 계단 들이 보였다. 눈앞에 있는 것만 같은 계단들은 걸음을 계속 걸어 계단 쪽으로 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가까워지기는커녕 더욱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비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니 비가 아니라 눈같이 지가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16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켜켜이 쌓인 먼지들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다.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먼지들이 떨어져나가 내 몸에 붙어 쌓여가고 있지만 이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면 그만이었다. 이것들을 털어내 버리면 내가 만든 모든 것들을 떨쳐내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이 다 까맣게 되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쪽이 앞쪽이고 이쪽으로 걸어가야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는 방향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방향은 어느 방향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앞에 계단이 있다 는 것, 그 계단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계단은 다가갈수록 멀어지지만 성연은 확신한다. 이 계단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확신이 믿음으로 변하면서 실제로 계단이 자신의 발 앞에 있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자신이 가람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나, 하지만 언젠가는 가까워질 거라는 믿음으로 나를 16년 동안 기다린 것 이였다

2층으로 올라오는 그 계단을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 계단이 앞으로 몇 개나 더 있을지 계단위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절벽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두렵지는 않았는지 계단의 폭이 점점 좁아져서 내딛을 수도 없을 정도인지 아님 이 계단들이 발을 내딛자마다 무너져 내려 자신이 끝을 알 수 없는 저 아래로 추락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겠지.

어둠의 두려움도 나에 대한 사랑과 언젠가라는 그 불확실한 믿음으로 당신의 세월을 다

보낸 건 아닌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 없는 엄마에게 집착하는 동안 가람은 높고 가파른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고 또 올라갔을 거라고,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을 오직 나를 위해 올라왔을 거라고.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올라오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어쩌면 내가 엄마 같은 존재였을 거라고. 엄마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던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하니 계단을 오르던 발이 멈췄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나만 바라보고 나를 위해 자신의 한 평생을 바쳤던 가람이 너무 가여워서였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있는 것만 같은데.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곳에 있는데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았다. 엄마도 나도 허공에 헛손질해도 상관없다.

계속 닿으려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닿을 거니까.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닿지 않았다.

아무리 뻗어도 까치발을 해도, 팔을 높이 치켜들고 뜀박질을 해도 닿지 않았다.

아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일거다. 하지만 가람에게 나는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지만 닿지 않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상상처럼 말이다.

16년 동안 분명 따뜻한 봄도 있었고, 더운 여름도, 선서한 가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항상 겨울과 같았고, 가람은 항상 가을 이였을 것이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든

아름다운 눈도, 오색빛깔로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들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을 것이다.

그냥……. 손발이 얼 정도로 춥고 쓸쓸하고 고독함만이 있는 가을과 겨울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따뜻함을 누릴 여유가 없었으니까.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으니까. 성연은 자신의 발밑의 계단을 보고 앞에 몇 개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이 계단을 보며 그저 바라보기만하다 뒤를 돌아봤다. 이상하게도 계단이 몇 개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몇 개 올라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마찬가지지만 그림. 내가 그린 그림들이 주변에 보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연이야 이건 무슨 그림이야?”

 “이거? 엄마 엄마가 이거 가르쳐준 거 그렸어

 “이게 엄마야? 엄마가 꽃이야?”

 “아니~ 이거 이름이야

 “이름? 연꽃이야?”

 “

 “그럼 이 파랑색은 뭐야?”

 “파랑색은 하늘, 이건 엄마

 “꽃은 연이고 이건 엄마야?”

 “응 하늘에 핀 꽃이야

 하늘에 핀 꽃을 그렸다. 엄마는 항상 연꽃은 맑고 깨끗하게 하늘을 향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난 하늘에 핀 꽃을 그린 거였다. 엄마랑 나랑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니까. 근데 떨어졌다. 평생 붙어있을 것만 같았었는데 떨어졌다. 아주 힘들지만 쉽게.

나랑 엄마는 각자 따로 따로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각자. 따로따로

미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는 이런 마음들이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한 것 같다.

내가 잘못된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하늘에 핀 연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핀 아름다운 연꽃을 그려야 했던 것이었다. 엄마를 하늘이라고 한 것도 잘못되었다. 그땐 왜 하늘은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엄마가 하늘이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성연을 떨어지지 않는 발을 다시 내딛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제 난 놓아주려한다.

 

 ‘아라’, 나의 엄마를.

풍선이 자꾸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데 나는 계속 붙잡고 있었다. 이 예쁜 풍선을 떠나보내기 싫어서, 이 끈은 놓아 버리면 다신 잡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붙잡고 있던 것을 이제는 놓아주려고 한다. 나의 몸이 커지고 나이가 들면서 이 풍선도 공기가 다 빠져 쪼그라들었다.

조금 남은 공기로 떠있던 풍선을 놓아주자 하늘로 향하지 못할 것 같았던 풍선이 새것마냥 공기가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고, 멀쩡해져 노란 색의 예쁜 풍선으로 돌아왔다다시 예뻐진 풍선을 보며 놓았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노란 풍선을 따라 고개를 드니 하늘이 보였다. 맑고 쾌청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들이 다 털어내진 것이겠지 그래서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게 된 거겠지.

 주변을 돌아보니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어둠은 사라지고 앞에 짐을 들고 내려오는 가람과 동석이 보였다. 가여운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미여진다가람은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으며 망부석처럼 서있는 성연을 보고 놀라 우산을 씌워준다.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부터 앞선다. 동석은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성연의 어깨에 덮여준다.

 “잠시 자리를 피해 줄 테니 하고 싶은 말하렴.”

성연은 동석을 쳐다보고는 아라의 무덤을 봤다. 동석은 멍하니 있는 성연을 보고는 망설이고 있는 가람과 함께 내려간다. 짐을 들고 내려가다 말고 돌아오는 가람.

 “감기 걸리니까 우산 쓰고 있으렴. 성연의 손을 잡아 우산 손잡이는 잡게 해준다.

 “차에서 기다릴 테니까. 너무 오래있지 말고 아니다. 천천히 와 기다리고 있을게

가람은 다시 안돌아올까 불안한지. 기다린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다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서도 계속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아라를 마주한 성연은 열리지 않은 입을 간신히 열어 말을 한다.

 

 “…….엄마

엄마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터져 나오는 눈물. 여태 자신이 쌓아왔던 벽돌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냥 엄마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근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엄마라는 단어 속에 모든 것이 포함돼있는 것 같다.  ‘미운 엄마’ ‘그리운 엄마’ ‘사랑하는 엄마’ ‘내가 많이 사랑했던 엄마하나밖에 없는 나의 엄마이제는 보내줘야 하는 엄마이제 엄마 말대로 진짜 가람이 자신의 엄마가 됐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왜 나를 혼자 두고 떠났냐고 왜 왜 그렇게 닿을 수도 없는 곳으로 갔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할 말이 많았다 근데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이제는 다 소용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아라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슬픔에 빠진 목소리로

 “난 이제

자신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괜찮아힘겹게 말하는 성연의 말에 등을 토닥여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며,

고맙다고 하는 그녀의 품속에서 성연은 다시 울기 시작한다.

한참이 지나도 성연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되기 시작하는 가람을 결국 자리를 박차고 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안 챙겨간 가람의 뒤로 우산을 들고 따라가는 동석, 가람의 발길이 멈추고, 시선이 닿는 곳으로 쳐다보니 무덤을 껴안고 울고 있는 성연이 보인다.

잠시 후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동석과 가람은 다가가 실신한 성연을 업고 내려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방에 눕혀놓고 가람은 성연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따뜻한 이불을 덮여주고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가만히 쳐다보다 불을 끄고 나간다.

어린 아이처럼 아라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던 성연이 눈을 뜨니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2층 다락방이 아닌 1층의 자신의 방 침대위에 누워있는 성연은 어색한 듯 천천히 일어나 걸터앉는다. 너무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는 것치곤 너무나도 깨끗이 잘 정리된 방을 둘러보다 입양된 지 얼마 안 돼 찍었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엔 아이를 앉고 웃고 있는 가람과 동석이 보이고, 새로 산 것처럼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솜사탕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다.


 이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앞에 서있는 엄마를 보며 가람이 사준 솜사탕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아줌마 엄마는 왜 사진같이 안 찍어요?”

 “솜사탕 맛있어?”

 “!” 성연의 질문에 말에 당황해서 솜사탕으로 말을 돌린다. 해맑은 웃음을 짓는 이 아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여자아이가 자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사진을 보고 있던 성연은 노크소리에 뒤로 돌아본다.

 “깨어났네. 다행이다. 따뜻한 코코아 들고 왔는데, 마실래?”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가람을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성연,

그런 성연을 보고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가람은 더욱 더 안절부절못한다.

 “아 다락방에 올려줄까? 여기가 더 따뜻해서. 그래서 몸도 안 좋고 하니까.”

주저리주저리 안절부절못하는 가람을 보고 성연은 천천히 움직여 가람의 손에 들린 쟁반을 받아든다.

 “그니까 그게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도 돼 죽 들고 올라갈게

 “괜찮아요.”

안절부절못하던 가람은 성연의 말에 가만히 못 두던 손을 멈추고 눈을 맞춘다.

그 뒤로 죽을 가져다주는 것도 적어졌고, 마당에 산책 나가는 일은 잦아졌다.

 “발작도 거의 안하고 말수는 적지만 그래도 하는 것을 보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

동석과 태환은 창밖 나무그네에 앉아있는 성연을 보고 있다.


 정원에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 성연을 보며 기분 좋은 듯 웃고 있는 동석,

저 그네는 마음에 병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사막처럼 메마른 도시에서 벗어나 이 시골에 왔을 때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는 자신의 딸을 위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이 그네를 만들어주면 좋아하겠지?’ 아이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더 우울하지만 자신 앞에선 가면 쓴 광대마냥 항상 웃는 가람을 위한 성연의 그네였다. 그네를 만들어주면 가족의 사이가 가람의 상태가 나아지길 바랐으니까.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맞다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이 여자고, 저 아이는 필요에 따라 선택한 것이니까.

그녀는 성연에게 집착하고, 나는 그녀에게 집착한다.

사랑과 연민의 차이는 바로그것이다. 성연에게 연민을 느껴 보듬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 건 가람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게 되고 울면 가슴이 아리지는 않는다. 가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가람의 웃으면 난 더 크고 환하게 웃게 된다. 울면 울게 한 근원을 찾아 그녀의 눈에 안 띄는 곳 멀리멀리 보내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아이한테는 아니다. 아니 걱정이 되긴 한다.

저 아이가 울면 가람이 울까봐 눈치 보이고, 울지 않았음 하는 것은 있다. 이게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그래서 난 가람을 위해 저 아이의 행복을 바랬다내 여자의 감정을 조종하는 저 아이의 행복을 바라거나 아니면 이 여린 여자의 포기를 바라는 것이 다였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성연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랬다. 가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있지만 저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 연민에서 정으로 바뀌면서 진심으로 걱정하고 신경 쓰이며, 아프면 마음이 아팠다.

2층에서 들리는 가람의 울부짖음과 다급함에 올라가봤을 때, 연민에서 정으로 남에서 가족으로, 나의 딸로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때 그 검붉은 피가 솟구쳤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서 자신이 의사가 아님을 원망했었다. 울다 지쳐 쓰러진 그녀보다 하얗게 질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저 여린 아이의 심장박동이 멈춰버릴까 그게 더 걱정됐었다.

그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생각에 빠진 동석의 생각에 들어온 태환에 목소리.

 “가족사진은 언제 찍을 거야? 점찍어둔 사진관 있다며?”

생각을 멈추고,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응 서두르다 놓치면 어떻게... 기다려야지

태환이 가고 저녁식사시간에 우물쭈물 망설이는 동석과 가람을 보고 성연이 먼저 입을 연다.

 “…….”

작고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잘 들렸다.

주위가 조용해서였는지 아니면 성연이 말하길 기다렸는지 모르지만 저 여란 아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말을 이어가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조급해하면 다시 뒷걸음질칠까봐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조심조심 다가와주길 바랄뿐, 그 이상 더 바랄게 없다.

 “저 그림 그려도 되나요?”

불안한 듯 손을 만지며 고개를 숙인 채 힘들게 말하는 성연. 가람과 동석은 안다. 성연이 말하는 그림이 늘 그리던 그 그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가람은 또 이 아이를 잠시 놓아줘야한다는 것도. 하지만 막고 싶지 않았다. 이제 자신 만든 성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기 시작한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괜찮아

 “해도 돼

그제야 고개를 드는 성연은 자신을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짓는 가람과 동석을 보고 그제야 안심한다. 가람은 여전히 쭈뼛거리는 성연을 어깨를 감싸 안아 식탁에 앉힌다.

 “어서 먹어 네가 좋아하는 두부된장국 했어

내가 좋아하는 두부된장국, 엄마가 질리도록 끓여주던 라면만 먹다. 가람이 만들어준 두부된장국이 너무 맛있었다. 피자나 햄버거가 아닌 두부된장국,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고 싶었던 두부된장국.

 “맛있어요.”

맛있다는 말에 안심한 듯 해맑게 웃는다. ‘다행이다.’ 이 아이보다 자신이 먼저 떠나면 이 여린 아이는 누가 보듬어주나 울 땐 누가 닦아주나, 약을 누가 챙겨주고 밥을 누가 챙겨주나 이것저것 걱정이 많았지만 마음의 병은 서서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를 엄마라 안 불러줘도 된다. 그냥 아프지만 말아다오.

나의 소박한 바람을 하늘이 알아줬는지 아님 나를 가엾이 여겨 그만 아프라고 하는 선물인가?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 졌다. 좁고 가난했던 나의 마음에 이 아이로 가득 채워지고 그 어느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난 40대가 넘었고, 50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지금은 이 아이덕분에 마음의 크기가 커지고 더 깊어졌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16년 세월이 단 한 번도 후회된 적은 없다. 이 아이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없다. 지칠 때는 있었다. 하지만 16년의 반쪽인 7년의 세월이 더 길고 역겨웠고,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에 그냥 성연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하다. 지금 내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 성연을 바라보며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맛있어요. 여전히 맛있네요. 엄마

동석과 가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엄마라고. 이모, 아줌마가 아닌 엄마라고 했다. 진짜로 엄마라고 언젠가그 불특정한 미래를 칭하는 그 언젠가

과거의 언젠가에도 없었다. 말 한마디로 이렇게 행복했던 날은, 동석이 사랑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 언젠가 동석이 자신에게 말했던 그 아름다운 말을 들었을 때보다. 아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모든 걸 다 포용할 수 있는 말이었다. 녹음해서 듣고 또 듣고 싶을 만큼.

눈앞에 없으면 사라져서 다시 볼 수 없다는 불안감은 사라지고 가끔 와서 밥도 먹고 차도 한잔하며 그 간 있었던 일을 잎을 통해 꽃잎이 나와 그 주위를 꽃밭이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고 여유로웠다. 남들의 당연한 일상들을 이제 다시 찾은 사람과 그 일상을 처음 살아보는 아이. 엄마의 자궁을 찢고나와 마음을 아프게 했던, 하나의 몸으로 두 엄마를 가졌던 아이는 이제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를 보내고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던 한 여자를 엄마로 인정했으며, 간절히 원해서 그래서 지옥 같은 생활도 괜찮다던 한 여자는 또 다른 지옥일수도 있는 아이를 입양했고 행복한 순간이 없지만 존재만으로도 괜찮다.’

자신을 위로했지만 이젠 정말 자신의 아이와 진정한 행복을 찾은 한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하고 포근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더 옆으로

사진사의 말에 의자에 앉은 가람과 성연은 더 가까이 붙어 앉는다. 뒤에 서있던 동석은 그런 그녀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성연은 자신의 다리위에 얹어진 가람의 거칠고 주름진 손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중년인 엄마도 언젠가 소녀였던 적이 있었겠지 사랑하는 아빠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봄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솜사탕처럼 달달하고 부드러운 그런 미래를 꿈꿨겠지,

아무리 자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쓸쓸하고 외로웠던 가을 그리고 여러 겹의 두꺼운 이불에

몸이 짓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이불을 덮어도 살갗이 아릴정도로 춥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을 지나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쉬는, 춥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봄이 왔다.

세월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색이 변한 것들을 닦고 또 닦아 시간이 가을과 같던 나, 겨울을 버티고 나에게 봄을 주려했던 엄마와 아빠. 이들의 시간을 닦아 그것들이 가진 고유한 색과 모양으로 되돌려주었다.

성연은 뒤로 돌아 동석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게 하고, 가람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싼다.

 “자 찍습니다.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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