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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18:27

파문 波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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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波紋)

   서인숙은 2년제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공부했다. 졸업하던 해에 부산 서면 고시촌에서 2년간 세무공무원 준비반에서 수강했고 시험에서 두 번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시험에서 낙방 후 서울 노량진으로 가서 한 번 더 도전해 볼까를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노량진에 간다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고시원에서 살아가야할 경제적 지출 규모에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고시원 방을 비우던 날, 공무원 시험 준비서적을 찢어서 유리컵과 접시들 사이에 끼워 택배로 옮겨질 때 충격이 가지 않도록 했다. 유리컵과 컵 사이, 접시와 접시사이에서 기출문제의 객관식 문항들이 찌그러져 있었고 중요암기사항이었던 글자들이 여러 가지 형광펜으로 칠되어진 채로 어그러져 있었다. 시험 준비서적을 제외하고는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소설집이 서인숙이 가진 책의 전부였다. 서인숙은 짐을 꾸리다가 시집의 책장을 넘겨보았다. 글씨들이 무늬처럼 어른거리며 바싹 마른 다시마 냄새를 밀어 올렸다. 오래 개켜놓은 이불을 펼칠 때 나는 한적한 냄새가 났다. 쪽창으로 햇살이 건너와 시집에서 부유하는 냄새를 비추었다. 서인숙은 시집 두 권과 소설집 한 권을 옷가지 위에 올리고 상자를 동여매고 테이프를 붙였다. 고시원에서의 살림살이는 옷가지를 포함해서 세 박스였다. 냉장고와 선풍기는 같은 반에서 같이 공부하고 밥을 먹었던 동료 수험생 두 명에게 나눠 주었고, 옷장과 책상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박스 세 개를 정리하고 택배 기사를 불러서 착불배송을 당부했다. 고향으로 오는 날, 서인숙은 생리 삼일 째였다. 생리 혈이 자주 흘러서 버스를 갈아 탈 때마다 패드를 갈았다.

 

   바람이 포구의 비린내를 휘저었다. 항만을 따라 비린내가 흩어지고 뭉치면서 바다의 일을 전했다. 포구의 끝자락에 날을 세운 해안 단애가 먼 바다에서 몰아오는 바람과 파도를 대번에 쳐내서 바람은 가벼운 제 몸통을 능선에 부비면서 비상했고 파도는 원양에서부터 돋아낸 혀끝이 잘려나간 채 순해빠진 너울만으로 항구의 안쪽에 닿았다. 항구에는 언제나 날쌘 바람이 먼저 당도해서 웅 웅 거렸고 기진한 파도는 저벅대면서 나중에 왔다. 겨울 항구에서 바람은 습기가 빠져서 피부에 닿았는데 바람은 직선적이고 뾰족했다. 예리하고 날 선 바람은 여름의 질척거리는 바람과는 달라서 피부에 난 모공을 찌르고 후볐다. 찰나를 찔러서 구석구석을 쪼개고 다지는 바람이었다. 겨울항구에서 사람의 피부는 푸석거려서 갈라지는데 그 좁은 틈새에 바람이 닿으면 "살을 에는 바람"이라는 우리말 표현은 적확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바람이 휘저으며 나가는 포구에서 갈매기들은 정박한 어선의 깃대에 올라 앉아 대가리를 쳐들었다. 노란 부리를 다물고 미동없는 갈매기들의 방향은 한사코 바다 쪽이었고 먼 원양에서 한 무리의 갈매기 떼를 몰고서 포구로 들어오는 어선 쪽에 눈을 고정시켰다. 칠성호가 방파제 안쪽에서 마력을 줄여서 속도를 낮추고 칠성수산 부두하역장으로 들어갔다. 갈매기 떼가 칠성수산 하역장 위를 어지럽게 날며 똥을 갈겼고, 어선의 깃발에 올라앉은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고 칠성수산 쪽으로 날아갔다. 칠성호 선장은 밧줄을 던져서 부두에 배를 결박했다. 부두 노역자 두 명이 칠성호 갑판으로 건너가서 사려진 멍게양식 밧줄을 끌어냈다. 밧줄에 들러붙은 홍합과 멍게들이 바닷물을 쏘아내며 갯내를 풍겼다. 멍게와 홍합을 매단 굵은 밧줄이 기계에 올려 졌고 기계가 돌아서 밧줄에 붙은 멍게를 훑어 냈다. 멍게가 떨어져 나올 때, 밧줄에 공생하던 홍합이나, 고둥, 거북손 같은 갯것들이 으깨지며 떨어졌다. 할머니들이 멍게를 골라서 한 쪽으로 모았고 간간히 씨알이 굵은 홍합을 양은 냄비에 주워 담았다. 갈매기 떼가 우짖으며 바스러진 홍합이며 거북손을 낚아채서 공중으로 갔다.

 

   자연산 멍게는 바다 속에서 해녀가 꼬챙이로 찍어서 서너 개씩 가지고 오는데, 해녀가 찍어서 올라오는 몇 저름 멍게를 모든 사람이 다 맛 볼 수는 없어서 양식으로 대량생산하는 것만이 전 국민에게 그 알싸한 식감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1973년에 경상남도 통영 앞바다에 멍게 종패를 줄에 매달아 바다에 넣고 키워서 전 국민에게 멍게의 식감을 제공하고자 멍게 양식은 시작되었다. 멍게 종패가 박힌 밧줄을 새끼를 꼬듯 여러 가닥 꼬아 엮으면 어른 종아리만 한 굵기의 양식용 밧줄이 완성되었고 겹으로 꼬인 줄의 사이사이에 멍게 종패가 매달려 마을 앞바다에 넣어 두고 일주일이면 어린 멍게가 달렸다. 줄에 매달린 어린 멍게들은 산딸기만 했고 산딸기만큼 붉었다. 이 어린 멍게들을 파도의 흐름이 세고 물살의 방향이 빈번하게 교차하는 깊은 바다로 데리고 가서 바다 아래로 수직으로 길게 내려두고 부표를 띄우고 깃발을 꽂아둔다. 2,3년간 오가는 물살에 치대이고 큰 파도에 쓸려가지 않으면 멍게는 전 국민이 먹을 수 있는 만큼 넉넉하고 씨알 굵게 자란다. 통영의 바다는 양식 멍게 생산량으로는 국내 최대인데 점유량은 약 70%정도라고 한다. 국내 소비량의 거의 7할을 소출한다는 말인데 생산량 70%는 일반적인 셈법으로 가늠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양식 멍게는 향이 연해서 먹기에 편했다.

 

   칠성수산은 통영에서 멍게와 굴양식이 성공하자 1975년에 통영 항만 구석에 수산 냉동제빙 건물을 짓고 굴과 멍게를 양식했다. 개인이나 부락의 공동 양식 업자를 모집해서 양식 방법을 가르쳤고 이들이 생산한 멍게와 굴을 도매로 끌어와서 전국으로 보냈다. 전 국민이 굴과 멍게를 반찬과 안주로 먹기 시작하자 사업이 번창했고 창업주는 주식을 발행하여 사업을 확장하면서 부산에 본사를 두고 서울에 해외 판매를 전담하는 지사를 개설하였고 통영, 사천, 해남, 영덕, 삼척 등 청정 바다 항만 소도시에 수산 냉동제빙 건물을 지어나갔다. 칠성수산은 (주)칠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해산물을 필두로 참치 통조림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90년대 스페인으로부터 300톤급 중고선박을 사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대서양과 베링해협과 북 태평양으로 원양어선을 보냈다. 칠성수산은 통영출신이 일으켜 세운 국내 100대 기업 순위에 드는 (주)칠성의 모기업이었다.

 

   칠성수산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양식 생굴을 까내어서 전국으로 보냈고 겨울부터 여름까지는 양식 멍게를 거두어서 출하했다. 겨울에는 굴과 멍게를 동시에 작업해야해서 늘 일손이 달렸다. 일손이 모자라는 겨울이면 칠성수산 출하장에는 할머니들이 아르바이트로 굴을 까고 멍게 껍질을 갈랐다. 할머니들은 일을 갈 때, 아르바이트라고 하지 않고 - 꿀바리 돈내기 간다, 라고 했다. 꿀바리 라는 말은 굴까는 작업 정도로 해석될 것인데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통영에서 굴까는 할머니들이 쓰는 말이니 사전에 없다고 해서 말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말은 굴을 까는 것뿐만 아니라 멍게를 가르거나, 고기의 내장을 가르는 일에 뭉뚱그려서 사용하는 그러니까 바닷가에서 돈이 되는 일을 모조리 아울러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돈내기라는 말은 깐 굴 1kg에 얼마를 쳐서 수당을 계산해주니 하루 종일 까낸 굴의 양에 따라 받는 노임에 차이가 생기므로 내기라는 말을 붙였을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해되었다, 라는 이 말을 굴까는 할머니들 앞에서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그 1kg으로 하루를 먹었고 한 해를 먹었는데 한 계절과 한 해를 연명해가는 할머니들의 돈내기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고 이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할머니들의 손등에 패인 대 뿌리 같은 혈관 속으로 피를 돌게 하는 일이지, 이해와 해석의 추상성을 들이댈 것은 아니었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칠성물산에 할머니들이 모여들었고 모여든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 종일 굴을 까고 멍게를 갈랐다.

 

 

   칠성수산 임직원용 출퇴근 버스는 아르바이트 할머니들을 수송하지 않았다. 임직원용 출퇴근 버스의 좌석수와 배차 간격은 50명이 넘는 할머니들을 조석으로 실어 나를 수는 없었다. 할머니들의 대부분은 통영시 외곽 리(理) 단위 동네마다 흩어져 있어서 버스가 모든 리 단위를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을 실어 나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러 아들이나 며느리가 자가용에 실어오는 할머니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저마다 왔다. 칠성물산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할머니들은 개별적인 자영업자 신분으로 원천징수 되었다.

 

   칠성수산 정문은 아치형 철판 구조물을 올리고 그 위에 슬로건을 한 자씩 덧붙여 놓았다. -수산 강국 안전 칠성, 이라는 여덟 글자였다. 아치형 정문 옆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좁은 통로의 문이 있었고 경비원이 안쪽에서 문을 열어젖히면 할머니들이 왔다. 할머니들은 올 때, 등산용 패딩 점프를 입고서 삼삼오오 대열을 이루어 왔는데 대열은 형형색색이었다. 할머니들이 걸친 패딩은 저마다 색이 달랐지만 붉고 노란 계통이 색의 계열을 장악해서 대열은 단풍색 계열이었다. 붉고 노란 패딩점프와 등산모자와 후드넥 마스크로 새벽 추위를 틀어막은 할머니들은 등에 도시락을 넣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칠성물산 정문 옆 쪽문을 통과했다. 할머니들은 숙직한 경비원에게 일일이 인사했고, 경비원은 일일이 대답했다. 간밤의 안부를 물어서 이 하루도 무사하기를 할머니들과 경비원은 서로 바랐다.

- 어제 밤 꿈자리가 뒤숭숭 하더라. 오늘 차 조심 사람 조심 각별히 해라.

할머니들은 지난 밤 꿈자리를 말해서 경비원에게 일렀다.

- 네, 어머니 그러지요. 어머니도 오늘 허리 조심하시고 칼 질 조심하십시오.

경비원은 할머니의 꿈자리를 알아서 살갑게 받아 들였다.

 

   화톳불이 올랐다. 칠성수산 숙직자가 불문을 낸 양철통에 마른 장작을 꽂았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서 불쏘시개로 박아 넣었다. 신문지는 잿빛으로 구겨지며 불에 순응했다. 불꽃에 바스라지는 신문지는 일주일전이거나 그저께나 어제의 소식이었을 정보들이 글자꼴을 마지막으로 태워내며 신문으로서의 제 구실을 끝냈다. 동녘에서부터 번져오는 푸른 어스름을 그으며 연기가 올랐고 장작으로 불꽃이 번져 옮았다. 숙직자는 얼굴의 반을 감싼 후드넥 마스크를 눈 아래에 까지 올리고 꼬챙이로 장작을 쑤시고 밀어서 불꽃의 활로를 열어주었다. 꼬챙이로 불꽃을 쑤실 때, 재가 올라서 숙직자 쪽으로 달려들었다. 숙직자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털어냈고 패딩 점프에 달린 모자를 뒤에서부터 넘겨서 머리를 덮었다. 매운 연기가 눈을 찔러서 숙직자는 중지와 검지로 눈꺼풀을 훑었다. 할머니들이 화톳불 곁으로 와서 배낭을 내리고 손을 내밀었다. 불꽃이 달려들어 할머니들의 손바닥을 지폈다. 화톳불 열기가 아지랑이로 번져서 할머니들의 손바닥 윤곽이 허물어졌다. 바람이 불어서 불꽃이 숨 쉬는 소리가 컸다.

 

   칠성수산에서 서인숙은 별정직 계약이었다. 서인숙의 정규직 전환은 계약서에 명기되지 않았다. 서인숙은 비닐 팩에 멍게 살을 담아서 포장하는 작업장에 배치되었다. 작업장 관리 반장은 작업 개시 전에 별정직을 일렬로 세워서 어깨와 팔 다리를 펴는 체조를 시켰고 위생과 안전규칙을 복창하게 했다. 여덟 글자를 크게 외쳐대는 식이었다.

- 청결엄수, 안전제일

서인숙은 야무지게 복창하고 박수치며 작업에 임했다. 일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컨베이어 벨트 한 쪽에서는 멍게를 칼로 갈랐고 다른 한 쪽에서는 껍데기와 살을 분리하고 두 명이 붙어서 멍게 살을 세척했다. 교대로 돌아가면서 자르고 벌리고 씻고 싸는 일이었다. 세척한 멍게 살을 두서너 개씩 집어서 열개 들이로 비닐 팩에 넣으면 분사와 밀봉을 하는 기계에서 소금물이 분사되어 비닐 팩을 채웠고 끝부분이 자동 밀봉되는 공정이었다. 공정이라고 까지 할 것은 없고 과정의 연속이었는데 출근부터 퇴근까지 반복되는 일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고 작동했고 서인숙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멍게를 손으로 집어서 비닐 팩에 넣었다. 컨베이어 벨트는 파도가 자박거리듯이 멈춤이 없었고, 쉼 없이 멍게를 실어왔다. 끊임없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세법개론과 회계원리는 무용지물이었고 다만 두 손의 근력으로 일들은 무난하게 작동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사람은 객관화된 물체로서만 움직였다. 서인숙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붙어서 빠른 손놀림으로 컨베이어 벨트의 지시를 따랐다. 서인숙은 오십분 일하고 십분 휴식했다. 휴식시간에 서인숙은 굴을 까거나 멍게를 잘라서 살을 빼내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가서 커피를 권하였고 여물게 익은 멍게 살을 들여다보면서 웃었다. 할머니들은 멍게를 보며 웃는 서인숙을 보며 허리를 펴고 인스턴트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 아가, 넌 웃는 얼굴이 참 곱다.

- 저 나이 때에는 울어도 곱다 마.

배시시 웃는 서인숙을 보며 할머니들은 이런 말을 했다.

- 멍게가 붉게 익어가는 것이 신기해요. 바다 속에는 빛도 들지 않을 텐데.

- 아이고, 처녀가 궁금한 것도 많네. 멍게는 어릴 때부터 원래가 빨갛다. 갯것들은 변하지를 않는 법이다. 

 

   칠성물산 총각들은 서인숙의 작업장 주변을 자주 기웃거렸다. 총각들은 서넛이 몰려다니면서 기웃거렸는데 서인숙은 기웃거리는 총각들의 시선이 난처해서 웃었다. 그 웃음은 방향이나 표적이 없었지만 입가가 올라가거나 눈가에 웃음기가 잡히면 총각들은 웃음의 방향을 저마다 제 쪽이라 우기면서 지들끼리 흥분해서 다퉜다. 서인숙이 웃을 때, 칠성물산 총각들은 가슴이 뜨거워졌고 배꼽 아래로 피가 몰렸다. 서인숙은 시선이 버거워서 다만 웃을 뿐이었는데 총각들은 몰려다니며 안달했다.

- 저것들은 치맛자락만 보면 저 모양이다.

- 인숙아, 총각들 애간장 타겠다. 작작 웃거라.

웃음 짓는 서인숙을 보며 할머니들은 말했고,

- 딱 보니, 저것들 쓸 만한 놈 하나 없다.

멍게 작업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총각들을 보며 할머니들은 혀를 찼다.

- 손주임은 사람이 안 여물더나.

조은옥 할머니가 멀리 부둣가 쪽에서 걸어 나오는 손무근을 보며 말했다.

 

   칠성수산은 (주) 칠성의 상무 직이 수산을 대표하는 공장장이었고 공장장 산하 2개부서 6개 파트로 조직도가 갖추어져 있었다. 총무, 공무, 회계 파트는 관리부 산하였고 양식, 가공, 어업 파트는 생산부에 소속되었다. 관리부서는 정규직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생산부서에는 과장급 부서장과 대리급 파트장과 서무주임을 제외하고는 전원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직원은 1년마다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이었고, 회사의 인력운영에 무리가 없는 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로 자동 계약갱신 되었다. 본사 인사파트에서는 칠성호 7명의 선장들의 촉탁 계약연장을 최우선으로 했고, 중장비기사와 버스기사, 경비원 순으로 계약연장 했다. 가공파트 비정규직은 계약연장 최후 순위였다. 서인숙은 가공파트에 소속되어 멍게를 포장했다. 아르바이트 할머니들은 특정 부서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가공파트 서무주임이 생산량과 노임 지불명세서를 관리부서에 제출하였으므로 소속을 굳이 나누자면 가공파트에 가까웠다.

 

 

   칠성수산 사무직 직원은 본사에서 공채로 채용했는데, 손무근은 대졸 공채로 (주)칠성에 입사했다. 입사 후 손무근은 (주)칠성의 사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업무 교육을 수료하였고 칠성수산으로 발령 받았다. 손무근은 칠성수산 생산부에 배치되어 가공파트 서무주임으로 보직되었다. 가공파트 서무주임의 업무분장에는 생산, 가공, 어업파트의 비정규직 출퇴근 기록카드 비치, 비품 목록 비치, 소화기 비치, 유류비용 정산처리를 비롯한 제반 업무와 멍게와 굴의 월별 출고량 추이를 기록해서 관리부서 총무파트에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없었고 대체로 잡일이 많았다. 대졸 입사자 손무근은 가공파트 서무주임의 신분으로 급여를 받았으며 직무에 따른 근무환경 수당을 추가로 받았다. 급여 명세서에 특수근무수당 육 만원이 표시 되어 있었는데 관리부서에서 근무하는 동일 직급의 주임들은 생산부서 주임은 잡일을 많이 하므로 잡일은 본래 수당이 붙는 것이라고 말했다. 급여가 이체되는 날이면 관리부서주임들은 손무근에게 말을 이렇게 했다.

- 손 주임은 특근 수당을 받으니 소주를 사라.

 

   할머니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작업했다. 의자라고 하는 것의 모양새라는 것이 엉덩이를 폭신하게 받쳐주고, 허리를 뒤로 젖혀서 기댈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의 의자는 동네 목욕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딱딱한 플라스틱 깔개였다. 할머니들은 이 의자에 부표를 두툼하게 잘라서 올리고 청 테이프로 의자와 부표를 동여매고 그 위에 앉았다. 앉았다기 보다는 몸을 얹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무장갑을 하지 않고 비닐장갑위에 면장갑을 두세 개 겹으로 끼고 할머니들은 굴을 깠는데, 날카로운 굴 껍데기가 면장갑 속을 자주 파고들었다. 할머니들은 그녀들이 살아온 일생만큼 오래 굴을 만져왔는데 그녀들의 손바닥에는 굴 껍데기에 베이고 긁힌 흔적이 잔가시로 박혀있었다. 손바닥에 잡힌 흔적은 본래부터 할머니의 손금인 것처럼 골이 깊어서 그대로 할머니의 운명이 되었다. 할머니는 굴을 까서 손금이 생겼는데 그 손금 때문에 굴을 까는 운명을 달고 사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손살피에 들어앉은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운명이 되는 지를 서인숙은 생각했다. 고시학원에서 공무원 시험문제를 풀다가 칠성수산에서 멍게 살을 포장하는 자신의 삶도 운명의 굴레에 예속된 것은 아닐는지, 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나지 못하는 본래부터의 사는 방식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되었건 굴 껍데기가 파고 든 흔적은 할머니의 운명으로 나아가 버렸다. 손금이 확정되고 운명이 결정되자 할머니들의 손은 더는 굴 껍데기에 생채기 나지 않았다. 겨울에 할머니들은 짠물이 면장갑 속에서 질척거려도 동상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은 동상에 걸리지 않는 운명도 깃들어 있었다. 운명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할머니들은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허리를 펼 때 할머니들은 휘파람소리를 내며 숨을 간헐적으로 내쉬었는데, 숨소리의 끄트머리에 잔기침이 잦았다.

 

   굴을 깔 때, 할머니들의 손매는 단호했다. 껍데기를 악다문 굴은 한 번의 찌르기와 한 번의 비틀기로 해체되었는데, 굴 껍데기는 한 번의 칼질로 열려서 뽀얀 속을 드러냈다. 굴의 육질을 발라낼 때 할머니들의 칼질은 서늘했다. 그 때의 칼질은 껍데기를 가를 때의 집중된 속도감과는 전개 방향이 달랐다. 알을 빼낼 때, 칼날은 굴의 속껍데기의 결을 훑으면서 알맹이를 도려냈다. 그 칼질은 -샤사각 소리가 나는 경쾌한 일회성의 훑음이었다. 그 -샤사각 훑기로 굴은 껍데기와 육질이 오롯이 분리되어 굴 껍데기는 바닥에 던져지고 알맹이는 플라스틱 통에 담겼다. 할머니들은 별다르게 집중하지 않고 -샤사각 칼질했다. 굴에 칼을 넣어 찌를 때, 할머니들은 어느 집 자식의 소갈머리를 들추어 찔렀고, 칼을 비틀 때, 어느 집 자식의 출세를 비틀었고, 굴 알을 훑을 때, 어느 집 며느리 음식솜씨에 혀를 찼다. 굴을 깔 때, 할머니들의 오가는 말에 어느 한 집안이 걸려들면 그 집안은 속내가 까발려져서 무참했다.

- 며느리가 들자마자 어른이 돌아가셨지. 그 집 아들내미도 노름에 미쳐서 강원도 정선인가 어디서 폐인이 다 됐다고 하더라만.

- 그 좋던 집안이 집구석 꼴이 말이 아이다.

- 그 박씨네 며느리 봐라. 얼마나 야무지고 참 하드나. 남편이 벌이가 없어도 지 혼자서 집안을 건사했지. 애들도 지 엄마 고생한 걸 절로 알아서 세상에 없는 효자 효녀 아이가.

- 사람 잘 들여야지 아무렴.

이런 말들을 할 때, 할머니들은 대체로 극단적인 비난과 칭찬을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집안의 흥망은 며느리가 좌지우지 하는 것인지 모든 성쇠의 중심에는 항상 누구네 집 며느리가 있었다. 특히나 한 집안이 쇠해가는 조짐이 보이면, 그 집안 며느리는 할머니들의 수다 속에서 헌신짝처럼 쓸모를 잃고 가차 없이 내몰렸다. 할머니들은 이야기의 중심을 옮겨가면서 여기저기를 후비고 팠다. 할머니의 수다 속에서 경비원은 근면성실해서 사장님의 표창을 받아야 지당했고, 버스기사는 대머리라서 공짜 술을 먹어야 마땅했다. 할머니들이 굴을 까는 공정 속에는 질타와 칭찬과 시샘과 슬픔의 말들이 뭉쳐서 허연 입김과 함께 허공을 떠다녔다.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앉아서 굴을 까고 세상살이를 깠다. 서인숙이 듣기에 대체로 그런 할머니들의 수다는 증오와 환멸이라기 보다는 정감과 정담에 가깝게 들렸다. 누구네 며느리에 혀를 찰 때도 그것이 악의나 저주에 기반했다기 보다는 동정과 동감이 버무려져 있었다. 할머니들은 모여 있을 때 주로 발설했다. 그 발설은 가벼운 전염병 같았지만 치명적이지 않아서 누구를 해칠 수 있는 세균이 묻어 있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말들은 그저 "쯧, 쯧” 하는 안타까움이 거개였고 그 안타까움에는 동시대를 버티어 온 그녀들 세월의 흔적이 더불어 자맥질하고 있었다.

 

   서인숙은 할머니들의 언설이 비벼내는 덩굴을 들추어서 볼 수는 없었다. 없었지만, 이야기들의 줄기 속에는 아마도 여성으로서 살아낸 개인사와 여성으로서 겪어낸 한국의 현대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듯 했다. 덩굴의 실체를 들추어 볼 수는 없어도 저 아래에서 응어리진 덩어리들이 잔뜩 붙들려 있으리라고 서인숙은 겨우 짐작만 했다. 그것들은 고름이기도 했고 고름이 터진 자리에서 돋은 붉은 새살이기도 했다.

 

조은옥 할머니는 한국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 둘을 건사했다. 다 자란 아들들은 출가해서 부산에서 살았고 아들들의 아이들이 시집 장가가서 증손주를 보았다. 조은옥 할머니네 촌가 마루위 벽에는 젊었을 때 찍은 남편의 흑백 사진과 중년이 된 두 아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마루에 걸린 사진 속의 젊은 남편과 남편 보다 늙은 아들들을 들여다보며 할머니는 소매 자락으로 사진틀에 붙은 먼지를 훔쳐냈다. 조은옥 할머니는 굴을 넣고 버무린 김장을 해서 아들들과 손주들에게 보냈다. 조은옥 할머니는 우리나이로 여든 하나였는데, 주민등록증 나이로는 일흔 일곱이었다.

 

   오금옥 할머니는 월남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 둘을 건사했다. 다 자란 아들들이 출가해서 서울과 강릉에서 살았고 그 아들들의 아이들이 시집 장가가서 증손주를 보았다. 오금옥 할머니의 촌가 마루위 벽에는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와 증손주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오금옥 할머니는 젊어서 경기도 성남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월남전에서 전사하자 살길을 찾아 들어온 곳이 남해안 언저리였다. 남해안은 월남이라는 나라에 조금은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는 터를 잡고 굴을 가르고 멍게 살을 까기 시작했다. 오금옥 할머니는 우리나이로 일흔 아홉이었는데, 주민등록증 나이로는 일흔 일곱이었다.

 

   조은옥 할머니와 오금옥 할머니는 같은 동네에서 반평생을 살았다. 살았다, 라는 말이 잠에서 깨어나고, 숨을 쉬는 일이라면 그 말은 맞을 것이다. 잠깨고 숨쉬기를 거듭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마에는 이제는 펼칠 수 없는 주름이 자리했고, 한 뼘은 족히 줄어든 몸의 길이만큼 고단했던 세월도 덩달아 지나갔다. 조은옥 할머니와 오금옥 할머니는 서로를 금이야, 은이야, 부르며 살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칠성수산으로 왔다. 조은옥 할머니와 오금옥 할머니는 칠성수산 작업장에서 서로 붙어 앉아서 굴을 깠다.

 

   칠성수산 직원식당은 직영으로 운영했고 한 끼에 사천 원이었다. 업체 사람이나 부두에서 노역하는 사람들도 사천 원이면 한 끼를 먹을 수 있어서 식당은 늘 만원이었다. 조리사 자격증을 보유한 주방장이 요리했고 대졸출신 영양사가 고용되어서 칼로리와 영양을 맞추었다. 배식은 뷔페식이어서 서빙하는 직원은 별도로 두지 않았다. 식당 중앙부분에 긴 탁자가 놓여 있었고 현미밥과 쌀밥을 담은 밥통과 우엉된장국, 배추김치, 고들빼기김치, 닭 감자 볶음, 꽁치 무 조림 과 방울토마토나 사과 한 알이 후식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중고등학교 급식 수준의 찬이었으나 배식담당 직원이 없어서 원하는 만큼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잔반 없는 식사 문화, 라는 여덟 글자가 식탁 중앙에 놓인 조화 화분에 꽂혀있었지만 허기를 몰아온 부두 근로자들은 대체로 가득 담아서 먹었고 먹고 남는 것은 버렸다. 늦게 식당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꽁치 무 조림에 꽁치가 동나서 무만 건져서 먹었다.

 

   서인숙은 배식 판에 현미밥과 우엉 된장국, 닭 날개 한 쪽, 고들빼기김치 두세 가닥, 꽁치 두 토막, 조림 무 한 쪽과 방울토마토 대여섯 개를 담아서 식탁에 앉았다. 맞은편 통유리로 된 창에는 하늘과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서인숙은 창 너머에서 치대는 파도를 응시하며 밥을 먹었다. 현미밥을 깨물면 담백하고 비린 밥 냄새가 입안으로 번졌다. 고시학원 수험생 식당에서 오므라이스를 숟가락으로 떠먹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수험생 식당에서 쪄 낸 밥은 수분이 말라서 입안에서 헛돌았다. 밥이라기보다는 식량에 가까웠는데, 다들 밥을 먹으면서 예상 문제집을 들여다보았고, 문제 해설집을 보면서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수험생 식당에서는 대부분 밥과 찬이 분리 되어 있지 않았다. 오므라이스, 제육볶음밥, 오징어 볶음밥, 돌솥 비빔밥, 짬뽕밥, 라면밥, 김밥, 주먹밥처럼 밥에 무엇인가를 함께 조리해서 내었다. 메뉴판에는 가정식 백반이 적혀 있었지만 백반을 먹는 수강생은 없었다.

 

   서인숙이 밥을 먹는 자리로 사내들이 와서 자리를 채웠다. 사내들은 닭볶음과 총각김치를 듬뿍 담은 식판을 내리고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사내들은 밥 먹을 때, 곁 소리가 심했다. 그 소리는 어금니와 음식과 혀가 비벼지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소리였는데, 소리의 음가가 난잡해서 소리라기보다는 소리의 찌꺼기에 가까웠다. 서인숙은 젓가락으로 조려진 꽁치의 가시를 발라내는 일에 집중했다. 숟가락으로 꽁치의 꼬리를 누르고 젓가락을 ‘ㅅ’자로 벌려서 등지느러미 부근을 가르면 속살과 뼈가 드러났다. 뼈를 걷어내고 잔가시를 걷어내서 숟갈에 얹어서 먹었다. 꽁치 특유의 기름지고 고소한 식감이 입천장에 닿았다. 고들빼기김치는 젓가락에 돌돌 말아서 입술에 양념이 묻지 않게 먹었다. 건너편에 앉은 사내들은 닭다리를 손에 들고 뜯어서 먹었고 손가락에 묻은 양념장을 빨아먹으며 쩝쩝 거렸다.

 

   서인숙이 밥먹는 자리 건너편 식탁에 손무근이 식판을 내리고 앉았다. 서인숙은 꽁치의 잔가시를 발라내서 입안에 넣으려던 순간에 손무근과 눈이 마주쳤다. 서인숙은 급하게 눈길을 거두고 젓가락을 입속에 넣었는데 빈 젓가락이었다. 서인숙은 꽁치를 덜어내고 맨밥을 먹었다. 맨밥을 먹었는데도 입안에서 꽁치 비린내가 나는 듯 했다. 서인숙은 우엉 된장국을 한 숟갈 떠서 머금었다. 꽁치를 먹는 모습이 손무근의 눈에 포착되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다. 건너편에서 손무근은 휴대폰을 식탁에 올려두고 밥을 먹었다. 손무근은 먹을 때, 숟가락으로 밥을 밀어 넣고 여러 번에 걸쳐서 씹었고 국을 떠서 먹었다. 건너편 이라고는 하지만 서인숙의 식탁과 손무근의 식탁사이는 사람들이 줄서서 배식대로 향하는 큰 통로가 지나서 수저가 식판에 닿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통로 중간에는 질항아리 화분에 육손이 나무가 여섯 가닥 이파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 통로와 육손이 화분 너머에서 손무근은 밥을 먹었다. 서인숙이 곁눈이나 스치는 눈으로 보기에, 그가 밥을 씹거나 국을 삼킬 때 곁 소리를 흘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숟가락질 한 번에 밥을 먹었고, 총각김치나, 감자알을 먹었다. 조금 늦게 식당에 온 탓에 꽁치 조각은 없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가시를 발라내는 일들은 하지 않았다. 서인숙은 식판에 남은 한 조각 꽁치를 가져다 손무근의 식판에 놓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무근은 주변에 시선을 돌려서 눈인사를 해가면서 열심히 먹었다. 먹는 중에 휴대폰 화면을 그어서 내용을 눌러 쳐다보기도 했다. 밥을 먹고 일을 해야 하는 사내의 부지런함이 녹아 있어서 그의 밥먹기는 건강해 보였다. 숟가락질 한 번에 젓가락질 두 번이 손무근의 밥먹기 패턴이었고, 어쩌면 그 절도 있는 먹기가 그의 생활 패턴이 아닌가를 서인숙은 짐작해 보았다. 저 남자의 생활 패턴에 끼어서 패턴의 결을 다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자 서인숙은 가슴으로 피가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손무근의 어깨 너머 유리창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하늘과 바다의 선을 가르며 날아갔다.

 

 

   할머니들은 직원용 식당에서 점심을 먹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기본적으로 돈을 내고 밥을 사먹는 생활양식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할머니들에게 밥은 직접 해서 먹는 것이지 사서 먹는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도시락을 배낭에 넣어서 왔다. 밥은 저마다 챙겨서 왔고 반찬은 한 사람당 한 가지 씩 가져와서 서너 명이 모이면 찬의 가짓수가 넉넉했다. 화톳불에 어묵이나 홍합을 담은 양은 냄비를 걸어두고 할머니들은 그 옆에서 밥과 찬을 먹었다. 새벽에 싼 밥이 식어서 숟가락이 들어가기가 힘들었는데 화톳불에 걸린 어묵 국물을 부어 말아서 먹었다. 할머니들은 먹을 때 군소리를 섞지 않았고 밥과 찬에만 집중했다. 국에 만 밥은 끈기가 없어서 입안에서 쌀 알갱이가 헛돌았고 살얼음 서린 총각김치를 끊어 먹을 때, 어금니가 시려서 얼굴 한쪽이 무너졌다. 할머니들은 입을 오물거리며 부지런히 씹고 잘게 다져서 음식을 넘겼다. 그럴 때 할머니들의 얼굴에 붙어있는 근육은 모조리 입 부근으로 몰려들었다. 할머니들의 입 주위는 몰려든 살들이 겹쳐서 잔주름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할머니들은 감자며 고구마며 생마늘을 은박지에 싸서 화톳불에 넣어두고 오후에 간식으로 먹었다. 

 

- 어머니, 이것 좀 드세요.

서인숙은 할머니들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서인숙의 나이는 할머니들에게 손녀 딸 정도였지만, 오가는 모든 사람들은 아르바이트 할머니들을 모두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나이를 따져 묻는 호칭이 아니고 굴 까는 할머니들을 부르는 고유명사였다. 서인숙은 식당에서 가지고 나온 방울토마토를 은옥, 금옥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 아가, 니 묵지. 매번 이렇게 가지고 오나.

조은옥 할머니가 서인숙을 보며 말했다.

- 영양사 언니가 그러던데, 토마토에 비타민이 많아서 피부 노화에 좋대요.

- 하이고 마, 여기서 더 좋아질 피부가 있나 어디. 그래 이리 줘봐라 니 성의가 기특해서라도 먹어 봐야지.

- 내일부터 기온이 많이 내려 간데요. 내복 두텁게 껴입고 오세요.

- 안 그래도 하늘이 한 마장씩 내려 쳐지는 모양이 눈발도 날릴 것 같다. 은옥, 금옥 할머니는 서인숙이 내민 방울토마토를 입속에 넣고 오물거렸다.

 

   서인숙은 점심을 먹고 나면 종종 건물 1층의 해양생태 전시관에 가서 수족관에 있는 열대어를 들여다보았다. 칠성수산 건물 1층 좌측 공간에는 내방하는 고객들을 위한 전시관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 (주)칠성의 창업주는 칠성수산의 정통성을 알리고 그룹의 모태가 되었던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 주기를 후계인 장남에게 일렀다. 장남은 선친의 유지를 받아 칠성재단을 설립하였고, 재단 명의의 장학기금을 매년 중고등학교에 전달했다. 통영시는 칠성재단을 비영리법인으로 지정하고 고유번호증을 발급했다. 그 무렵 칠성수산은 건물 증축작업과 동시에 내부 공간을 리모델링했고 건물 1층에 해양생태 전시관을 개설하였다. 일본 바이어들이 굴과 멍게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서 더러 칠성수산으로 오면 전시관에서 멍게와 굴의 생육과정 동영상을 보았고, 남해안 청정해역에서 자라는 굴과 멍게의 품질 우수성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전시관은 1관과 2관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1관은 굴과 멍게 그리고 각종 해초류의 생육과정을 표본화해서 벽면을 따라 배치했고, 2관은 프로젝트를 설치해서 남해안 바다 풍경과 칠성수산의 양식장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스크린에 상영했다. 열대어를 담은 소형 수족관은 줄지어 1관 홀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다.

 

   수족관 전면하단에는 열대어의 학명과 원산지가 적혀있었다. 열대어는 스물네 종이었고 스물네 개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만큼 생소한 그것들은 물고기의 기능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물에서 살아야 될 이유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열대어는 물속에서 살기에는 색채와 외형이 요란했다. 겨울에 할머니들이 형형색색의 외투를 걸치고 칠성수산으로 오가듯이 열대어는 형형색색의 몸통으로 저마다 수족관 속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서인숙은 열대어 스물네 종의 이름과 본적지를 외울 수 없었다. 열대어는 모양과 색채가 달라서 저마다 특유의 고유함을 발산해 내었지만, 갯것의 냄새가 제거되어 물고기 냄새는 나지를 않았다. 서인숙의 눈에 비치는 열대어는 스물네 개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개체로 보였다. 그 스물네 개인 한 개체가 크기와 색깔별로 작은 수족관에 담겨져 있었는데 각각의 수족관 속에서 열대어는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모형 이파리 같았다. 인공수초에 붙어서 형광색을 풍겨내는 열대어는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경로가 훤히 드러나는 투명한 몸으로 조명을 받았다. 서인숙이 열대어 먹이 알갱이를 낱알로 물위에 띄우면 이파리 같았던 열대어가 주둥이를 벌려서 삼켰는데 행동이 느린 열대어들은 알갱이를 삼키지 못하고 빈 입질을 해댔다. 서인숙이 알갱이를 더 던져놓아도 처음에 못 먹은 열대어들은 다시 빈 입질이었다. 못 먹는 열대어를 먹이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어서 목울대 안쪽이 간지러웠다.

- 저 녀석들은 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먹어요.

손무근이 서인숙이 서있는 곳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 방금 준 먹이는 위쪽에 있는 놈들이 다 먹어버리거든요. 이것을 주면 아마 밑에 있는 녀석들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손무근이 봉투에서 알갱이를 꺼내더니 수족관에 뿌렸다. 알갱이는 빠르게 수족관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래쪽 고기들이 대가리를 모래에 박고 주둥이를 벌려서 먹었다. 손무근이 열대어 먹이 봉투를 서인숙에게 내밀었다. 엉겁결에 열대어 먹이 봉투를 받으며 서인숙은 손무근의 손을 보았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질 한 번과 젓가락질 두 번의 패턴을 가진 그 손이었다. 손가락이 길었고, 마디가 도드라져 있었다.

- 열대어를 키우는건 저도 처음입니다만, 어떤 녀석들은 수면가까이에서 먹고, 어떤 녀석들은 중간층에서 먹죠. 또 어떤 녀석들은 밑바닥에 떨어진 것을 먹기도 하죠. 다 같이 잡거해도 녀석들이 사는 공간은 정해져 있지요. 그 공간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은옥, 금옥할머니의 손샅 사이까지 파고든 굴 껍데기가 낸 생채기처럼 손무근 주임의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육 만원의 특근수당이 감당해 내야하는 잡일처럼 물고기도 물속에서 지정된 자리가 있었다. 그 지정된 자리에 먹이가 닿아야만 먹을 수 있었고 아가미를 벌려 호흡할 수 있었다. 저 나뭇잎 같은 외래종 열대어가 칠성수산 해양생태관까지 옮겨져 와서도 제 사는 층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나 멍게와 굴이 파도와 조류에 끄달리며 양식 줄에 매달려 커나가는 것이나, 지방이나 서울 어디 궁벽한 고시학원에서 수업을 수강하는 고시생들이 어묵이나 김밥을 씹으면서 수험서를 쳐다보는 일이나, 그 일이 버거워서 자진낙향해서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멍게 살을 포장하는 일이나, 멍게 살과 생굴을 거두고 다듬어 사방팔도로 보내서 온 국민을 먹이는 칠성수산의 일이나 정해져버린 운명이 작동하는 방식은 매 한가지였다. 그 방식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 살수 있다는 사실이고 먹이가 오지 않거나 어디 중간 단계에서 훼손되면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골자였다. 애당초 설계서에 기초해서 흙이나 벽돌이나 유리가 들어앉아야만 건물 꼴이 서듯이 삶의 토대가 정해지는 기본바탕을 손무근 주임은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이 영락없는지를 서인숙은 생각했는데 그 말은 고통스럽지만 유효해 보였다. 유효해 보여서 무서웠다.

 

- 여기 있는 열대어는 담수어 종이지요. 동남아와 아마존, 중앙아메리카에서 공수해 온 종 들입니다. 날아서 왔죠.

- 민물고기라서 바다로 올 수는 없었나보네요.

 

   칠성수산 멍게 포장 작업장은 동쪽 벽과 서쪽 벽이 뚫려 있어서 거기로 컨베이어 벨트가 세척장에서부터 길게 연결되어 부두에까지 뻗어 있었다. 멍게 작업장의 컨베이어 벨트는 그 뻗어나간 큰 줄기를 근간으로 건물안쪽에서 작은 타원형으로 작업장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합쳐져서 부두로 연결되었다. 그러니까 직선의 컨베이어 벨트가 세척장에서 부두까지 길게 이어지고 그 중간부분에 타원형 컨베이어 벨트가 하나 더 설치 된 모양이었다. 평소에 멍게를 포장할 때는 세척장에서 실려 온 멍게들이 작업장 내에서 타원형으로 빙빙 돌았고 멍게 포장하는 직원들이 둥글게 벨트 곁에 붙어 서서 세척된 멍게를 비닐 팩에 넣었다. 그럴 때에는 부두 쪽으로 뻗어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일부는 작동하지 않았다. 작동하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시선을 두면 먼 바다 양식장에서 멍게를 실어 나르는 FRP선이 부지런히 오갔다. 4.5톤짜리 FRP선은 칠성 1호부터 칠성 8호까지 일곱 척이었는데 4호는 처음부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칠성수산 부두에서 칠성호 일곱 척의 배는 교대하며 부두를 드나들었다. 바다로 나갈 때 빈 배는 홀가분해서 스크류에서 휘감기는 물살이 가벼워 보였다. 바다의 속을 두들기면 바다는 깨어나는 것인지 한사코 배를 걸머메고는 먼 곳으로 갔다. 그럴 때, 바다는 거대하고 유순한 생명체 같았다. 얼마간 잠이 들었다가 스크류 휘감기는 소리에 깨어나서 묵묵히 일을 하기위해 먼 곳으로 가는 운명의 장을 짊어지고 있는 듯 했다. 파도는 바다가 짊어진 운명의 장에서 무시로 파문(波紋)을 새겼고 그 파문 속에서 멍게와 굴은 여물게 자랐다. 멍게 양식장에서 양식 줄을 거두어서 부두로 돌아오는 배는 파도에 이물을 쳐 박으며 왔는데 배는 갈 때와 올 때 꼬락서니가 달랐지만 바다는 오고가는 일이 모두 순했다. 바다가 오고가는 공간으로 하루 종일 갈매기가 우짖었다.

 

   멍게 포장 작업장 서쪽으로는 내륙의 산자락에서 떨어져 나온 능선이 봉우리를 이루며 흘러와서 바다로 들어갔다. 봉우리들은 해발 200미터 정도 되는 높이로 고만고만했다. 서인숙이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충무공의 3대 대첩을 배울 때, 저 봉우리들에서 고성과 사천을 거쳐서 진주로 이어지는 불을 지폈고 배둔 마산 진해 동래로 이어지는 불이 저 봉우리들에서 피어올랐으며 충무공이 통영과 거제 사이의 손바닥만한 바다에서 적장의 머리와 적병의 코를 자를 때 마다 승전보의 불길이 봉우리에서 올랐는데,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펼쳐서 적을 족칠 적에도 봉우리에는 어김없이 불이 올랐고 그 불들이 낮고 트인 산자락을 옮겨 붙어서 한양 목멱산 봉수대에 일제히 집결할 때, 사직과 종묘를 걸머쥐고 쩔쩔매는 임금은 급기야 중국의 귓구멍 옆에까지 가서 간절하고 처참한 소리로 '헬프 미'를 외쳤다고 고등학교 국사선생은 영어를 섞어가면서 말했다. '헬프 미'는 '헤엘 미'로 발음하는 것이 보다 미국적인 발음이라고도 말했다. 멍게 작업도중 서쪽으로 눈길이 갈 때, 노을이 핏빛으로 얼룩져 겨울 하늘은 처연했다. 해발 200미터 봉우리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서울까지 번져가는 과정을 서인숙은 짐작해 보았는데 짐작해 본다고 짐작되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멍게가 붉은 색을 뿜어내며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는 모양과 봉수대를 번져 갔던 불길의 여정은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 일과 이 일이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봉우리 아래로 세병관(洗兵館) 기와지붕의 처마가 핏빛 하늘로 솟은 모습이 보였다. “하늘의 은하수로 병장기를 닦아서 거둔다.”라는 의미로 두보의 시 “세병마”에서 따서 쓴 글이라고 학교 다닐 때 국어선생은 말했다. 서인숙은 역사선생이 아닌 국어선생이 세병관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것이 시에서 따온 글자라는 말에 조금은 납득이 되기도 했다. 세병관은 수군 통제영 건물이었는데 피와 살을 도려서 적의 전의를 꺾어야 하는 통제사가 바람 잘 드는 건물에 서서 구상해 냈을 바다의 일과 임진년에서 무술년으로 건너가는 전쟁의 밑바탕을 견뎌낸 바다의 일은 멀고 섬뜩했다. 그 바다에서 굴이 여물고 멍게가 자라서 칠성수산으로 오는 그 뒤죽박죽을 서인숙은 생각했는데 생각은 언제나 밑도 끝도 없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은 한문도 함께 가르쳤는데 씻을 '洗'자와 무기 '兵' 자를 칠판에 크게 써두고 기말고사 한문시험에 출제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서인숙은 세병이라고 외우고 끄적였던 기억은 있는데 그해 기말고사 한문시험 문제에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세병관 처마 끄트머리에 핏빛이 사위면서 하늘은 저물어 갔고 처마 끝을 따라서 청록색 등불이 파도무늬로 드리워졌다. 민흘림식이라는 목조 기둥들이 등불을 지키고 있었다.

 

 

   손무근이 카트를 끌고 왔다.

- 원생이 24명이라고 하더군요. 24개를 다 포장해야 되는데, 여기선 50개 이상이 아니면 포장을 해주지 않아요. 포장하는 일은 영 자신이 없어서요. 인숙씨 손을 좀 빌려야겠습니다. 대신 제가 맛있는 저녁을 사겠습니다.

손무근이 퇴근 무렵에 서인숙에게 부탁했다. 이틀 후 어린이 집에서 해양생태관 견학일정이 잡혀있는데 공장장 지시사항이니 아이들에게 기념품을 선물하라고 생산부서장은 손무근에게 지시했다.

- 남자 아이들은 로봇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여자 아이들은 어떤 것이 좋을지 도무지 어렵네요.

- 글쎄요, 제가 어릴 적이랑은 또 다르니. 장난감 코너에서 보고 결정해야 될 것 같아요.

- 아무래도 그렇겠죠?

손무근이 카트를 밀며 앞서갔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대형마트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된 전구가 패턴을 달리하며 반짝이고 깜빡거렸다. 카트를 밀고 오가는 사람들로 실내는 혼잡했고, 아이들이 엄마 손에서 떨어져 나와 장난감코너로 몰려가서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있었다. 진열대 가득 아이들의 장난감 세상이 펼쳐졌고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이 한 쪽 진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장난감은 종류별 색깔별 크기별 가격별 제조회사별로 촘촘히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가 제 키 높이에 눈을 맞추고 로봇을 들고 아빠에게 통사정을 하였고, 엄마는 로봇의 가격을 보고는 질겁해서 아이와 아빠를 끌어내갔다.

- 아이들 눈높이에 진열된 장난감이 제일 비싸네요.

- 부모들이 힘들겠네요.

우린 뭘 사는 것이 좋을 까요?

 

 

   ‘우리’라는 말은 일인칭이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포함해서 하나의 테두리 안으로 몰아서 친밀감을 배가 하는 말인데, 이 남자가 지금 이 말을 끄집어내서 무턱대고 나에게 말하는 것인가. 남자가 남자와 여자를 ‘우리’라는 말로 묶을 때, 그 묶음의 의도와 방향은 무엇을 기약하는 것인가. 나를 확장해서 너에 닿을 때 그 범위가 연착륙할 수 있는 지점이 ‘우리’가 되는 것이고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말로 포개서 ‘우리’라고 할 때, 그 말의 최종 행선지는 어느 곳이어야 하는가. 굳이 끄집어내어서 ‘우리’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일인칭 대명사가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알고서 하는 말인가. 서인숙은 우리라는 말의 중력과 어떤 결속력을 생각했다. 서인숙은 가슴이 빨라졌다.

- 인숙씨, 우리도 사야죠.

- 아......, 네, 여자 아이들 선물은 제가 고를게요.

서인숙은 인형이 진열된 곳으로 재촉해서 갔다. 바로 옆 코너에서 신혼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유아용품을 고르고 있었다. 손무근이 카트 가득 로봇 장난감을 싣고 인형이 진열된 곳으로 왔다. 모양과 크기가 같은 동일 제품이었다. 서인숙은 점원을 불러 로봇과 인형을 진열품이 아닌 새것으로 교체해서 다음날 칠성수산으로 배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카트에 쌓인 로봇을 다시 내렸다.

- 이거 진땀을 뺄 뻔 했습니다.

- 뒷수발 값도 가격에는 포함 되어 있겠죠.

서인숙은 손무근의 서투름이 설핏 우스웠으나 과장 되지 않은 서투름이 싫지 않았다. 이 남자의 삶의 패턴에 끼어들어 자신이 다듬어 낼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도 같아보였다. 우리도 사야죠, 라고 했던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 서인숙은 장난감 매대를 빠져 나왔다. 열대어가 진열된 곳에서 남자아이들이 수족관에 얼굴을 비비고 코를 누르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 열대어는 물고기 냄새가 나지 않아서, 물고기 같지 않아 보여요

- 무슨 단풍잎 같죠. 갯것들하고는 다르지요.

 

  손무근의 말에서 서인숙은 갯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던, 할머니들의 말이 떠올랐다. 갯것들이라는 손무근의 말과 할머니들의 말은 내용이 달랐지만 바다에 기초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집념이나 고집이 서려있는 동일한 바탕의 어감으로 다가왔다. 물건 사기를 마치고 손무근은 법인카드로 계산하고 바른 글씨로 서명했다. 글씨가 선명했고 손마디의 움직임이 날렵했다. 계산대 옆에도 아이들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어서 장난감 코너를 무사히 빠져 나왔던 엄마는 기어이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어야만했다. 아이는 좋아서 입을 벌렸고, 엄마는 한 숨을 내쉬며 카드를 내밀었다.

 

   임종이 임박했을 때 (주) 칠성의 창업주는 후계인 장남에게 지역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면서 어린이를 위해서 기업이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니 서둘러 진행하라고 일렀다. 후계인 장남이 해양생태관과 칠성재단을 설립하고 나서 맨 처음 한 일은 칠성 어린이집을 건립한 것이었다. 부산, 통영, 해남, 영덕, 삼척에 차례로 칠성 어린이집을 건립 하였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조손가정의 자녀들을 원생으로 우선 모집하는 조건으로 각 지자체에 기부체납 하였다. 칠성수산 해양생태관에 열대어종 수족관을 설치하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견학문의 요청이 빈번해졌고 공장장은 본사에 보고하고 승인을 얻어 해양생태관 견학에 관한 수용 입장을 시에 등록된 어린이 집에 공문으로 발송했다. 공문은 관리부서 문서번호로 시행되었으나 기안 행위와 소요 예산만을 총무과에서 집행하고 현장은 특수하며 안전사고 등의 위험소지가 있으므로 현장 주임이 안내 와 수행을 하는 것으로 내부결재 처리 되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견학 도우미는 특수 근무 형태이므로 현장 주임이 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관리부서 주임들은 말했다. 손무근의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특근수당 육 만원에는 해양생태관 견학도 추가로 포함되었다.

 

   이튿날, 오전에 경광등을 단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가 도착했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 버스에서 먼저 내렸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무근에게 인사했다. 아이들이 일렬로 버스에서 내렸다. 손무근은 아이들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어 주며 두 여선생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아이들은 버스에서 내리자 말자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며 달아났다. 한 선생이 아이들의 팔을 잡고 외투를 잡아서 줄을 세웠고 다른 선생이 아이들에게 박수치며 - 한 줄서기 한 줄서기, 여덟 글자를 따라하게 했다. 아이들은 -한 줄서기, 한 줄서기를 발음하면서도 모든 신경을 사방으로 분산시켰다. 서인숙은 은옥, 금옥 할머니 곁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 병아리들이 견학 왔는가 보네

은옥 할머니가 굴 까기를 잠시 멈추고 아이들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하이고 저 놈 보거라, 오지기 까불어 댄다. 피가 맑아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금옥 할머니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어린이집 버스가 주차한 곳에서 건물 1층 해양생태관 입구까지는 느린 걸음으로도 십여 초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아이들은 십여 초의 거리를 견디지 못했고 한 줄서기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여자 선생들은 아이들의 시선을 붙들고 행동을 통제하느라 입놀림 손놀림 몸놀림이 빨랐다. 아이들의 줄서기는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했고 비틀리고 끊어졌다. 그럴 때 마다 여자 선생들은 곤혹을 치렀다. 한 줄서기가 끊어지고 늘어질 때 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칠성수산 작업장 구석구석을 건너다녔다. 아이들의 웃음은 자지러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졌다. 아이들에게 웃는 일은 숨 쉬는 일처럼 당연하고 당당해 보였다. 한 아이가 웃으면 다른 아이가 덩달아 웃고 다른 아이가 웃으면 부근이 모두 웃어서 아이들의 웃음은 봄꽃처럼 여기저기서 터졌다. 웃음소리는 멍게 작업장과 굴 박신장을 간질이며 나아갔고 웃음이 휘돌아 나간 자리에 웃음꽃잎이 떨어져 내렸다. 굴까는 할머니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마른 얼굴에 눈주름을 지었다.

 

   손무근은 아이들에게 열대어의 이름과 원산지와 행동과 먹이 습성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수족관에 붙어서 나름대로 골똘히 쳐다보기도 하고, 수족관 유리에 코와 입을 부비기도 했다. 거피라는 열대어는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민물고기이며 색이 화려하고 꼬리에 치마를 달고 있는 모양새였다. 흔히 구피라고 부르며 암컷이 수컷보다 몸통이 컸다. 손무근이 거피를 설명하는 도중에 이 말을 듣고 남자 아이들이 여자가 남자보다 클 수는 없다고 오기를 드러냈다. 여자아이들도 질세라 암컷이 수컷보다 힘센 곤충이 많다고 아우성을 쳤다. 아이들은 속사포처럼 말했다. 손무근은 간신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열대어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아이들은 생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각자 놀았고 또 뭉쳐서 놀았다. 뭉쳐서 놀아도 아이들은 개별적인 동선을 유지하며 놀았고, 시선에 걸려던 물건을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해석했다. 멍게의 발달을 담은 표본병을 보고 - 야 일루 와봐. 도깨비 대가리야, 하고 소리쳤고. -저게 머에요? 라고 물어서 멍게라고 답을 하면, - 멍개래, 멍멍 개래 개, 하면서 쑤군댔다. 한 아이가 웃으면 그 근방이 웃고 이내 모두 웃었다. 여선생들은 무안해 하며 - 나쁜 말 하는 어린이는 산타할아버지께서 선물 안주시는 것 알죠, 하며 아이들을 다루었다. 유리창으로 햇살이 파도의 무늬를 데리고 와서 생태관 벽면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해양생태관 견학은 삼십분 정도 소요되었다. 삼십분 동안 두 명의 여선생은 아이들이 혹시라도 물건을 파손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손무근은 삼십분이 세 시간처럼 느껴졌고 어린이집 여자 선생들이 아이들을 통솔해 내는 과정이 위대해 보였다. 장갑을 끼지 못하는 아이에게 여선생이 장갑을 끼워 주었고, 비니 모자를 눌러 쓴 아이의 모자를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었다. 해양생태관을 나올 때에도 아이들의 한 줄은 탄력적으로 비틀렸다.

- 병아리들이 나오나 보네.

할머니들이 소란스러운 건물 입구 쪽으로 눈길을 두며 말했다. 쏟아지는 구슬처럼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은 튕겨져 나왔다. 붉은 패딩을 걸친 한 아이는 할머니들이 굴을 까는 근처에 까지 와서 막대사탕을 물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 뭐 에요, 이건?

- 굴이지.

- 구름으로 만들었어요? 구름 같아요.

- 그래, 니 말도 맞네. 바다에서 커는 구름이다. 니는 몇 살이고?

은옥 할머니가 굴까는 칼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 여섯 살이요. 아이가 사탕을 입에 물고 한 손을 모두 펴고 저 쪽 손으로 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장갑이 두툼해서 손가락을 펴기가 어려워 보였다.

- 니는 참 똘똘하게 생겼네. 이리 와 보거라 할머니가 사탕주마. 은옥 할머니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서 내밀었다. 아이는 사탕을 받더니 또래들 쪽으로 뛰어갔다. 여자선생이 호루라기를 불어도 아이들은 건물 뜨락을 쏘다녔다. 바람이 차서 아이들의 볼에 홍조가 돋았다. 어린이집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손무근은 포장한 장난감을 하나 씩 아이들에게 건넸다.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일러서 아이들은 한꺼번에 -고맙습니다, 라고 따라 말했다. 손무근은 손을 흔들어 아이들을 배웅했고, 창문안쪽에서 아이들이 주먹손으로 차장을 두드리고 손바닥을 펴서 흔들었다. 경비원이 정문을 개방하고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서인숙은 멍게 살을 포장하면서 떠나가는 어린이집 버스와 손을 흔드는 손무근을 번갈아 보았다. 손무근은 버스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 까지 한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햇살이 닿아서 겨울 산의 속살이 환했다. 세병관 지붕에 얹힌 어처구니들이 햇빛에 번쩍거렸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서 식당입구에 부두 노역자들이 마른기침을 하고 담배를 태웠다.

 

   봄비가 그치자 빈 나무 마다 꽃이 열렸다. 남해안에서 봄꽃은 전령처럼 날랬다. 봄에 꽃들은 이파리보다 먼저 피어났고 향기보다 빨리 번졌다. 남해안에서 봄꽃이 피면 천지간에 봄 사태가 위태로웠다. 내륙에 꽃이 피면 바다는 파도의 결을 세우지 못했다. 차갑고 탱탱하게 치대던 파도는 보드라운 햇살에 순해져서 결이 고왔다. 굴과 멍게는 차가운 파도의 거센 파문을 육질에 아로새기면서 성장하는데 남해안 봄 바다에서 파도는 무늬를 제대로 찍지 못했다. 봄꽃이 열리면, 굴과 멍게 작업은 한물 걷혔다. 출하량이 줄어들었고, 출하되는 것들도 속살이 허물어졌다. 봄에 꽃이 피면 할머니들의 아르바이트도 끝이 났다. 멍게 작업은 한 여름 입구에까지 이어지고 다시 가을이면 성수기가 돌아서 서인숙은 계약연장 되었다. 할머니들은 사쿠라가 만개 했을 때, 칠성수산을 떠났다. 할머니들이 떠날 때, 생산부서장은 참치세트를 한 상자씩 마련했고, 손무근이 할머니들의 손에 잡혀 주었다. 생산부서장은 할머니들의 건강을 당부하고, 내년에 지방 신문에 공고 하면 다시 와서 굴을 까달라고 부탁했다. 직원 전용버스를 운영해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도록 공장장님이 허락했다며 모두들 안녕히 가시라고 생산부서장은 구십도 허리를 굽혀 인사였다. 할머니들은 손무근의 손을 잡고 젊은 사람이 참하다며 어깨며 등을 다독였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가을에 다시 보자면서 칠성수산 직원 전용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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