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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17:23

드러내고 싶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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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고 싶은 일기



1.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발가벗었다. 50만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발가벗었던 사람들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추위를 이겨내거나 저마다의 개성을 위해 의상을 갖추고 살고 있다. 나의 옷장에도 다 벌의 옷들이 즐비해 있다. 옷장. 내게 있어선 가장 필요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보통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옷을 입어야한다. 나는 최소한의 저항의식으로 속옷을 입지 않는다.


2. 

하루에도 여러 번 생각한다. 나체차림으로 밖을 돌아다니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나의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며 태평하게 날씨가 좋네. 라고. 나도 잘 알고 있다. 보통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그것이 내가 인터넷이라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개인 블로그에는 그동안 찍어놓았던 나의 나체 사진들과 여러 유명인사들의 나체사진이 저장되어있다. 사진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의 몸의 변화를 여실히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물론 철칙까지는 아니지만 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내 성기사진은 극도로 숨기고 있는 주의이다. 성기는 신체의 중심을 나타내므로 성기를 노출한다면 나의 나체는 사진에 100%보여 지겠지. 2%를 가리면서 미묘한 신체의 균형을 위해 노력한다면 이해하겠는가? 나의 중심이 가려진 사진들을 공유하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3.

언제부터 노출에 대한 나의 생각이 확립되었을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옷은 나를 가려주는 물건이라 여겼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갑자기 힘든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른 등교시간과 야자를 끝내고 늦은 하교시간은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였고 일정한 생활에서 오는 답답함이 지겨웠다. 어느 날은 속옷들이 한꺼번에 빨려서 입을 속옷이 없어 당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날 태어나서 처음 팬티를 안 입고 학교에 갔다. 바지와 살이 부딪히는 감촉은 나의 하루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하굣길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기겁을 하였다.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다. 순간 부끄러워졌지만 부끄러움의 감정에 왠지 모를 해방감이 더해져 고등학생의 나에게 자극이란 단어를 맛보게 해주었다. 이런 감정을 꺼내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너 변태구나.” 라고.

 

4.

옷을 입고 있는 나는 사람들과 비교해보아도 다른 점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이게 옷이 가지고 있는 힘인가? 저기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과 같다. 내 앞에 있는 내 친구와도. 친구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시간을 보내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엔 한 단어만 계속 맴돌았다. 몸캠. 몸캠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화상채팅을 하던 그는 랜덤으로 사람들이 걸리면서 더러운 장면들을 많이 목격했단다. 남자들이 다 벗고 자위행위를 하던 모습이나, 항문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 치를 떨며 화상채팅의 현실에 대해 말을 하던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이내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의미로 인상을 구겼다. 자신의 비밀병기를 만천하에 드러내던 바보 같은 녀석들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화상채팅은 흥미로웠다. 바로 집에 가서 화상채팅을 즐겨 보아야겠다.

 

5.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고 바닥에 있는 속옷을 걸쳤다. 비로소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보였다. 친구가 말했던 화상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랜덤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가 말한 그대로였다. 여러 남성들의 모습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화상채팅의 세계에선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나보다. 간간히 잡히는 여성들은 둘, 셋이 모여 나를 구경하거나, 뜬금없이 노래실력을 뽐내거나하는 이 세상 음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정상적인가 하는 생각에 화상채팅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순간, 한 영상이 잡혔다. 불이 켜져 있는 천장을 비추던 영상은 이내 한 여성의 팔에서 손으로, 그리고 발가락에서 허벅지로 스치듯 보여주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팔과 허벅지 손가락 발가락만으로 마른 체형의 여성이라고 어필하는 것 같았다. 흥미가 생겼다. <- 안녕하세요.^^> <she - 아 안녕하세요?> 하며 손을 흔드는 그녀. <- 이 시간에 뭐하세요? 몸매가 좋으신 것 같아요.^^> <she - 아 감사 감사^^ 님도 체크무늬 속옷이 보기 좋네요.> 남이 나를 평가하였다. 그것도 여자가 나의 98%를 보고 평가하였다. 흥분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일단 진정하자. <- 정말이요? 몸은 저질인데 고마워요. 근데 부분 부분 보여주니까 좀 정신없네요. 하하.> <she - 다 보여주지 않는 게 더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나요?^^* 그래도 정신없을 순 있겠네요. 하하하.>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아니에요~ 저랑 잘 맞으시는 것 같아요. 상상력자극 되죠. 물론.’이라고 쓰려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영상에선 그녀의 작지만 예쁜 가슴이 스쳐 지났고, 눈에 똑똑히 각인되었다. 나는 바로 <- 저랑 잘 통하시는 거 같아요. 아니 오늘만 보고 싶지 않군요. 메신저 아이디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녀를 이번만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녀도 내가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정보를 공유하고 늦은 밤 아까 느낀 감정으로 그녀의 몸을 생각하면서 색다른 쾌감의 자위를 하였다.

 

6.

학교를 다니고 이제 좀 적응이 되었나 싶더니 적응을 지나 현재는 너무 무료해졌다.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세상에 맞춰 살고 싶지 않은데 학교라는 울타리는 지루한 사건들의 반복이다. 수업 듣고, 밥 먹고, 집에 가고, 다음날이 되고. 휴대폰 사용도 잘 안한다. 의미 없는 대화들, 의미 없는 웃음들. 그렇게 살고 있던 내 휴대폰이 지금은 경쾌하게 울리고 있다. 그녀이다. 일주일정도 우리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는 끊임없고 술술 잘 통한다. 그녀에 대해 일주일동안 알게 된 정보로는 한 여대의 대학생으로 지내고 있다는 점, 서로의 집이 그리 멀지 않다는 점, 현재 남자친구가 없다는 점 정도이고 노출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아니 노출증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노출에 대한 생각들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우리의 삶의 패턴은 거울이라도 되는 듯 비슷하다. 나의 은밀한 블로그 사진들을 보내주며 이건 어떨 때 어떻게 찍은 거다 라며 생각을 공유하고 그녀도 나름 귀여운 엉덩이나 가슴사진들을 보내주며 화답한다. 내 곁의 친구들이 여자 친구냐고 물어볼 정도이니 그녀와 나는 급격히 친해진 게 맞겠지.

    

7.

점심식사이후 지겨운 전공수업. 교수는 무어라 설명하는지 한번 놓치면 파악하기가 힘들다. 눈이 살살 감기려던 찰나 휴대폰화면이 켜진다. 그녀다. 말 대신 사진 한 장만 달랑 보낸 그녀의 모습은 여리고 긴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만지고 있는 사진. 액션을 취하고 있는 사진은 처음이다. <- 뭐야. 이 시간에? 하하> <she - 오늘 공강이라 집에 있어서 심심했어.> 지겨운 전공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의 심심함을 위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남자 화장실 맨 끝으로 들어가 윗도리를 벗고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 지금 학교화장실. 하하. 색다르다.> 나도 바지를 벗었다. 별로 엄청난 수위의 사진들이 오고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학교 화장실에서, 그녀는 집에서 사진으로 우리는 섹스를 나누었다. 이미 나는 그녀에게 빠져버렸는지 모르겠다.

 

8.

그녀와 알게 된지 한 달이 조금 안되었다. 그동안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건 많지만 여전히 비밀뿐이다. 하지만 나도 숨기는 게 그만큼 많으니까. 기본적인 신상정보도 모르고 서로의 몸만 알고 있는 관계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노출에 대한 고집은 나를 뛰어넘는듯하다. 이미 몇 번의 야외노출 경험이 있다는 그녀의 말은 왠지 모를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성격상 야외노출은 단지 나의 희망사항이자 꿈일 뿐인데 그녀는 서슴없다. 한번쯤은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한다. 그녀를 만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깨질 것이니까.

 

9.

나의 세상에 그녀는 깊숙이 다가왔지만 겉으로 보이는 생활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인터넷과 휴대폰 속에만 살고 있는 생물 같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사라진다면 함께 그녀도 사라지게 되는 걸까. 꾸준히 연락은 하지만 이제는 연락빈도도 식은듯하다. 우리 서로는 색다른 자극을 원하는 게 분명하였다. 사실 누구 먼저라도 상관없었지만 그녀의 제안은 반복되는 지루함을 깼다. <she - 우리 서로 미션을 줄래?> <- 무슨 미션?> <she - 일주일? 5개 정도의 노출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기. 어때?> <- 재미는 있겠네. 그런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she - 이렇게 연락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새로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5개의 작품들을 공유하고 만나자. 만나면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될 거야.> 역시 잘 통하는 게 분명하다. 각자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5개의 사진을 찍는다면 그녀와 대면하고 새로운 시작이라. 실제로 그녀를 만나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실제 몸은 어떨까 외모는 어떨까. 그녀의 2%를 보고 싶다. 그 제안에 100%의 그녀를 마주하고 싶어졌다.

 

10.

일단 사진 하나는 가지고 있던 사진하나로 해결하였다. 나머지 4개가 남았다. 번갈아가면서 주제를 정하기로 하였다. 우선은 내가 테마를 잡았다. 카페에서의 노출사진. 하반신노출이다. 이런 주제는 싱겁다는 식으로 그녀는 기대하라며 으스댔다. 다음날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러 오전시간대에 들어왔지만 심장은 두근거렸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바지를 벗었다. 특별히 팬티는 입고 왔다. 인증샷을 찍듯 최대한 에로틱하게 사진을 찍었다. 재빨리 바지를 입으려던 찰나 종업원이 2층으로 올라왔다. 종업원이 내려갈 때까지 바지를 못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웃으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다리를 벌리고 치마가 위로 올라가 야한 속옷이 보이는 모습의 사진. 역시 급이 달랐다. 그녀의 사진의 각도에서 프로 노출러라는 생각에 감탄하였다. 이제 그녀의 명령을 기다릴 때다.

 

11.

그녀가 가진 능력에 비해 제안은 약간 싱거웠다. 각자의 집에서 성기를 가린 채로 가장 야하게 보일 수 있는 사진을 보내주기. 남자로서 가장 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세가 무엇일까 생각 끝에 약간 움츠린 듯한 포즈의 사진을 보내기로 하였다. 엉덩이를 보여주며 아기처럼 움츠린 사진. 그녀를 만나며 나도 노출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었다는 생각에 약간 뿌듯했다.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그녀도 감탄하였다. 사진공유가 진행될수록 나는 즐기게 되고 있었다. 그다음은 나의 차례다. 약간 자신감이 있었던 나는 친구가 보는 앞에서의 노출사진으로 정했다. 그녀는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사진에 친구가 걸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이내 승낙했다.


12.

내가 제안했지만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어떻게 하면 물 흐르듯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난 게 친구가 잘 때였다. 친구가 걸리는 사진이니 속이는 건 아니었고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화상채팅을 처음 알려주었던 친구에게 오늘 술이나 한잔하자고 오랜만에 내가 산다고 말했다. 공짜 술을 먹는다는데 거절할 놈은 없으니 물론 친구도 좋다고 했다. 밤에 친구를 만나 각자 학교생활의 지루함을 주제로 술을 마셨다. 학교이야기를 하다가 친구 놈이 너 근데 요새 잘 되가 던 여자 있지 않았어?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하기에 이제 조금 있으면 보여줄게 기다려. 임마.”하며 넘겼다. 그렇게 친구 자취방에서 한잔 더하고 자기로 했다. 술을 많이 먹어 온몸이 빨개졌지만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으로 옷을 벗었다. 여유 있게 사진을 찍고 자야지 했건만 사진 찍는 소리가 날 때 친구가 눈을 떴다. “야 뭐하는 거야 옷 다 벗고 무슨 사진을 찍어” “취했냐? 무슨 사진? 그리고 나 원래 옷 벗고 자는 거 몰랐냐. ?”하며 도리어 큰소리로 받아쳐버렸다. 그녀와의 관계는 차마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엔 나는 정상범주의 사람이니까.

 

13.

사진을 보냈지만 10시간째 그녀에게서 답장이 없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면서 인터넷뉴스를 넘겨보다가 낯설지 않은 헤드라인을 읽었다. - 인터넷속의 음란행위들- 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랜덤채팅이나 화상채팅 같은 사례들이 보여 지면서 음란행위나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사기들을 잘 정리한 기사였다. 그동안 그녀를 의심해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생각과 그녀의 생각이 잘 맞았고 대화말투로 그녀는 완벽한 여성의 모습을 띄고 있었으니까. 기사를 읽고 두려워졌다. 여자라는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던 건 사실이었다. 목소리를 들어본 것도 아니었으며 얼굴을 본 것도 아니니까. 10시간째 연락 없는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해졌다. 무료통화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하루가 지난 것도 아니니 일단 기다려보았다. 그녀가 여자라는 것과 나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14.

하루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녀에게 연락이 온건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학교과제가 밀려서 과제에 치이다가 연락을 못했다나 뭐라나.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그녀의 존재였다. 그때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자는 친구와 그 옆에 수줍은 듯한 모습의 여성.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녀의 외모는 처음 보았다. 귀여운 상의 모습으로 남을 속이려고 하는 모습의 얼굴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몇 초간 그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she - 미안해. 아 내 얼굴도 나와 버렸네. 급하게 찍느라고 정말.> <-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네. 귀여워. 그런데 너의 목소리도 한번 듣고 싶어 졌어 통화할래?> <she - 무슨 일이야? 통화를 하자 그러고. 나야 좋지.> 내가 용기를 못내 통화를 못했던 것일까.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쉬운 일을 그동안 못했다니. 바보 같았다. 걱정도 모두 사라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외모와 딱 떨어지는 귀여운 목소리였다. 한 달 정도의 답답함을 이번의 통화로 모두 풀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을 새웠다.

 

15.

피곤한 몸을 세웠더니 시간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그녀와 밤새 통화한 덕에 늦잠을 자버렸다. 통화도중 이제 마지막으로 그녀의 제안만이 남았으니 어떤 테마로 사진을 찍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만나서 마지막 사진을 채우자. 같이 나오는 사진을 찍는 거야 어때?”였다. 그녀와 만날 시간이 한 번에 앞당겨졌다. 나는 이미 그녀를 좋아하게 되어버렸고 그녀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 눈치였다.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 뒤 통화내용도 확실함을 강조할 대목으로 서로 자기 위로를 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자위를 하였다. 폰섹스의 즐거움에 빠진 것 같다.

 

16.

나는 그녀의 98%를 알고 있다. 그녀도 나의 98%를 알고 있다. 그리고 내일이면 우리는 만나서 서로의 100%를 알게 될 것이다. 100%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빨리 내일이 와서 그녀를 만나고 싶다.

 

17.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 사진공유가 될 날이다.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노출관계로 알게 되어 처음 만나는 날에 잘 보이기 위해 가장 좋은 옷을 고르다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만나는 장소는 우리 둘의 중간지점인 영등포 타임스퀘어였다. 처음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할까 생각했다. 제대로 말을 꺼낼 수나 있을까 혼자 긴장감 넘치게 영등포로 발을 향했다. 일부러 많은 인파가 다니는 곳으로 잡길 잘했다. 어수선할수록 첫 만남이 안 어색하겠지. “어 어디쯤이야? 나는 다 왔어.” “정말? 조금만 기다려 줘 나도 거의 다와 가거든. 빨리 갈게.”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이런 연애의 감정을 그녀에게 느끼다니 역시 그녀는 특별하다.

 

18.

지금은 일기가 아니다. 나는 그녀와 같이 있다. 그녀의 이름을 만나고 처음 들었다. 세미. 그동안 삭막한 메신저에서 세미의 말투와 실제 얼굴을 보며 말하는 말투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세미와 영등포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웃는 모습이 내가 생각한 표정보다 귀여웠다. 세미의 모든 모습이 감동이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세미와 나는 나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첫 만남이지만 몸은 수도 없이 보았다. 하지만 실제 느끼는 감촉과 비율에서 커다란 차이점을 느꼈다. 또다시 감동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부족했던 2%를 채우며 200%의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새벽이 되었다.

 

19.

새벽에 집을 나선 세미와 나는 말없이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긴 파카를 입고 있다. 안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세미와 나는 미션의 마지막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 나는 남자답게 먼저 옷을 벗었다. 뒤이어 세미도 옷을 벗었다. 실오라기하나도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체의 모습이다. 이제 사진을 남기려고 타이머를 지정해 두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나체로 길거리를 활보하듯.




이름: 이정혁

이메일: funsun@naver.com

번호: 010-9232-9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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